[인도네시아 정국 어디로 가나]상."하비비 체제 얼마 못간다"냉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수하르토 없는 인도네시아' 를 이끌어 갈 하비비 체제는 과연 순항할 수 있을까. 자카르타 현지에서 보는 시각은 일단 비관적이다. 우선 학생과 재야단체의 시각이 차갑다.

재야 운동가인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의 측근인 모흐타르 (53) 는 21일 "하비비의 대통령직 승계는 사실상 수하르토의 집권 연장 술책" 이라고 단언했다."이는 새로운 정부를 원하는 국민의 염원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하비비는 수하르토의 '정치적 자식' 이다. 하비비 체제는 본질적으로 수하르토 체제의 연장" 이라고 모흐타르는 혹평했다.

인도네시아 애국 학생연합 (GMNI) 의 라우디 수노노 (23) 는 "수하르토의 퇴진은 물론 기쁜 일이다.

그러나 하비비 체제 출범은 새 정부 출범을 봉쇄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지난 19일의 '총선실시 및 새 정부통령 선출' 보다 오히려 후퇴한 것" 이라고 말했다. 여권내의 사정도 긍정적이지 않다.

우선 하비비가 군을 제대로 통제할 능력이 있는가가 핵심적인 관심사. 물론 위란토 국방장관 겸 통합군사령관이 수하르토의 사임발표 직후 '새 정권에 대한 변함없는 군의 지지' 를 표명하기는 했다.그러나 20여년 동안 직업 관료로만 일관해온 하비비가 과연 수하르토처럼 군에 대한 카리스마적인 장악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의회내 군부파의 지도자인 샤르완 하미드의 최측근인 밀요노는 "군장성중 일부는 수하르토의 완전한 퇴진을 원하고 있다" 고 말했다. 군부가 상황에 따라서는 하비비 체제에 지지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 대목이다.

의회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인도네시아 최대 일간지인 콤파스지의 제임스 루흘리마 정치담당 국장은 21일 "하비비의 취임과 무관하게 현재 의회대표들이 현 정권에 대한 탄핵과 새 정부 선출을 준비중" 이라고 전하고 "하비비 정권은 기껏해야 3, 4개월을 버틸 수 있을 것" 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사회 반응도 차갑기는 마찬가지. 1, 2차 산업도 제대로 발전되지 않은 처지에 "첨단산업육성만이 살길" 이라고 외치며 항공산업육성 (IPTN) 을 주도, 미국과 마찰을 빚어온 하비비는 대외적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인물' 로 간주되고 있다. 이는 곧 새 정부에 대한 대외신인도를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현지 정치분석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이같은 하비비 앞날에 대한 부정적인 예측에도 불구하고 학생과 재야세력들이 새 정권을 전면 부정하면서 '제2차 정권타도 운동' 에 돌입할 가능성은 적어도 현재로선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일단 수하르토가 물러난 마당에 국민들을 다시 한번 전면적인 반정부 투쟁으로 유도할 명분이 약하기 때문이다.

2천8백만 이슬람교도의 모임인 무하마디야의 지도자 아미엔 라이스 (53)가 21일 "새로 구성될 내각이 민주적인 인사로 구성된다면 하비비정권을 인정하겠다" 고 밝힌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문제는 하비비정권의 '수명' .메가와티의 정책보좌관인 수바기오 아남 (68) 은 이날 오전 "하루 빨리 새 선거법에 의한 민주적인 의회가 구성되고 이를 통해 새 정부통령이 선출돼야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 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즉 하비비 체제를 과도정권으로 인정하겠다는 얘기다. 결국 하비비정권의 앞날은 새 정부가 취할 개혁정책의 내용과 성격에 달려 있는 셈이다.

새 정권이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정책을 내놓는데 실패한다면 인도네시아 위기는 재연될 수밖에 없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자카르타=진세근 특파원〈sk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