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구조조정]정리대상 부실채권만 100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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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앞으로 정리해야할 부실채권과 이에 필요한 재정지원 규모 등에 대한 정부의 공식 추정치가 처음 나왔다.그동안 국제금융가에서 한국 정부가 대책만 내놓았지 금융 구조조정에 돈이 얼마나 들고 이를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복안이 없다며 개혁능력까지 의심받아온 것을 감안하면 한발짝 진전된 것이다.

◇ 부실채권 규모 = 3월말 현재 모든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은 1백18조원. 이중 부실여신이 68조원이고, '요주의여신 (3~6개월미만 연체)' 이 50조원이다.이중 일부는 기업이 증자나 자산매각 등을 통해 갚을 수 있기 때문에 1백조원 정도가 정리대상 부실채권이 될 것이란 게 정부 추산이다.

그러나 지금도 계속되는 기업부도를 감안하면 부실채권 규모는 갈수록 불어날 수밖에 없어 정리대상 부실채권 규모를 더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재정지원 규모 = 부실채권을 팔 경우 금융기관은 50조원을 손해보고, 50조원만 건질 것으로 가정했다. 회수 가능한 50조원중 절반인 25조원은 성업공사가 사주고 나머지 25조원은 금융기관들이 민간에 알아서 매각토록 했다.

이 때 성업공사는 매입대금을 공사가 발행한 부실채권정리기금 채권으로 지급한다. 다음으로 금융기관이 입을 50조원의 손실을 메워주는 문제다.

매각 손실분 만큼 자본금이 잠식돼 국제결제은행 (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미 금융기관들이 부실채권 정리에 대비해 15조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아 놓아 실제 필요한 증자규모는 35조원이다.

여기다 현재 BIS비율 8%를 못맞춘 은행들의 증자지원에 4조원이 더 필요해 금융기관들이 증자로 조달해야할 자금은 39조원이다. 이 가운데 20조원은 금융기관들이 기존 주주나 외자를 끌어들여 자체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정부는 19조원만 지원한다.

이중 3조원은 이미 서울.제일은행 증자에 들어갔기 때문에 신규지원 규모는 16조원이 된다. 증자지원은 예금보험공사가 발행한 예금보험기금 채권을 금융기관에 현물출자하거나 금융기관이 발행한 후순위 채권을 예금보험기금 채권과 맞바꾸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부실 금융기관 정리에 따라 발생할 예금인출 사태에 대비해 예금보험공사가 9조원의 채권을 발행, 정리대상 금융기관의 예금을 대신 지급한다. 은행 폐쇄 때는 종금사와 달리 '가교 (架橋) 은행' 을 설립하지 않고 해당 은행의 예금과 대출을 다른 우량은행으로 바로 인수시키는 영업양도 방식으로 처리할 계획이다.

◇ 국민부담 = 이미 발행한 것을 포함해 64조원의 채권이 모두 국민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다.성업공사가 매입한 부실채권은 '자산담보부 (ABS) 증권' 의 형태로 외국에 되팔아 매입대금을 회수하고 예금보험공사 출자분은 해당 금융기관이 정상화된 이후 지분을 팔아 자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기관 예금 대지급에 쓴 돈도 해당 금융기관의 자산이나 대주주 재산에 구상권을 행사, 받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부담은 64조원의 채권발행에 따른 이자부담이 전부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앞으로 발행할 채권의 금리가 12~14%이고 올 하반기에 40조원, 내년중 10조원의 채권을 발행할 계획이므로 올해는 3조6천억원, 내년에는 8조~9조원의 이자를 부담해야 할 것으로 정부는 추산한다. 그러나 이는 성업공사가 매입한 부실채권을 사들인 가격인 25조원 이상으로 팔고, 예금보험공사가 출자한 금융기관의 주식을 되팔 때 적어도 출자할 당시의 주가수준은 된다는 전제아래서만 가능한 얘기다.

또 정리되는 금융기관 예금 대지급에 들어간 돈은 70%정도 밖에 되돌려 받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부담은 정부 추정액보다 커질 수 있다.

정경민 기자 〈jkm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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