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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은 그대로지만, 코드가 달라졌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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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호 06면

지난주 수요일 서울광장에서는 6월 민주항쟁을 기리는 6·10 기념집회가 열렸다. 수만 명(경찰 추산 2만 명, 주최 측 추산 15만 명)이 서울광장에 모여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방식을 비판하고 정책 기조 변화를 요구했다. 광장민주주의 또는 거리의 정치가 다시 한번 폭발한 셈이었다.

광장이 제도 정치에 맞서는 시민 정치의 거점이 돼 온 것은 오랜 역사를 갖는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의 아고라(agora)가 광장의 원형이다. 아크로폴리스가 종교와 제도 정치의 중심지였다면, 아고라는 경제 활동의 공간이자 민회를 열어 정치·사회 문제를 토론하던 시민 정치의 거점이었다. 광장은 대의민주주의에 대응하는 참여민주주의의 현장이자 보루라 할 만하다.

우리 현대사에서는 광화문에서 대한문에 이르는 세종로 공간이 이런 의미를 갖는다. 특히 시청 앞에 있는 서울광장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에서 지난해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참여민주주의와 시민 정치를 포괄하는 이른바 ‘광장 정치’의 거점을 이뤄 왔다. 지난주 서울광장의 개방을 둘러싼 논란이 치열했던 이면에는 바로 이런 광장의 역사적·상징적 의미가 작동하고 있었다.

집회 참가자 수, 4분의 1로
지난해 촛불집회와 비교할 때 올해 6월의 광장 정치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먼저 그 참여 규모에서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올해 6·10 기념집회는 경찰 추산이든 주최 측 추산이든 참여자가 지난해의 4분의 1정도로 줄었다(지난해 6·10대회 경찰 추산 8만 명, 주최 측 추산 70만 명). 그 열기 또한 지난해에는 거의 연일 이어졌지만 올해에는 그렇지 않은 양상을 보였다.

왜일까.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서거 정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시민들이 거부감을 갖기 때문일까. 시민 참여가 많이 감소한 것을 지켜볼 때 일견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걸음 물러서 보면 지난해의 ‘촛불 정국’과 올해의 서거 정국은 상이한 코드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시민 참여 역시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촛불 정국의 정점이 6·10 대회였다면, 서거 정국의 정점은 6·10대회가 아니라 지난 5월 29일 영결식 당일이었다. 지난해 6·10대회에 필적하는 규모의 시민들이 광화문과 대한문 사이의 세종로를 가득 메웠으며, 더 없는 안타까움과 뜨거운 눈물로써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 보냈다.

촛불 정국과 서거 정국은 그 이슈가 다르다. 촛불 정국에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정부의 서투른 협상이 도화선이 됐다면, 서거 정국에선 전직 대통령의 안타까운 죽음과 그의 삶 및 가치에 대한 재발견이 출발점을 이뤘다. 무엇이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에 대한 책임 소재가 주요 쟁점 중 하나를 이뤘지만, 서거 정국 내내 우리 사회를 일차적으로 가로지른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예기찮은 죽음에 대한 간절한 추모 그 자체였다. 결코 적지 않은 시민의 봉하마을 방문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은 서거 정국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런 차이는 집회를 이끌었던 주체의 측면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촛불집회의 경우 10대 여중생들로부터 시작해 기성 세대로 확장됐지만, 추모 열기에는 처음부터 전 세대가 참여했다. 영결식이 있던 날, 나는 경복궁 영결식에 참석하고, 이어 서울역 앞에서 추모 대열을 지켜봤다. 운구차가 속도를 올려 서울역을 벗어나는 순간 나의 마음 또한 더없이 처연했지만 30·40대 남성들이 흘리는 굵은 눈물 역시 더없이 인상적이고 또 마음 아팠다. 서투른 협상에 대한 ‘비판’과 노무현이라는 한 시대와 결별하는 ‘아쉬움’ 사이에는 확실한 거리가 존재한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반응에서도 차이가 관찰된다. 지난해 촛불집회에는 쇠고기 협상에서 시작해 교육·민영화·대운하 등 정부 정책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활발히 이뤄졌다. 올해 추모 열기에는 서거의 정치적 책임 공방을 둘러싼 토론이 진행되긴 했지만 ‘인간 노무현’을 기억하려는 차분한 애도가 주를 이뤘다. 물론 여기에는 ‘미네르바 사건’과 인터넷 공간의 규제에 대한 논란 이후 상대적으로 침체된 사이버 공간의 변화가 반영돼 있기도 하다.

더불어 지난해 9월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도 광장 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 왔다. 경제위기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1997년 우리의 대선에서 볼 수 있듯 경제위기가 진보 세력에 유리한 조건이 되기도 하지만, 이번 유럽의회 선거가 보여주듯 보수 세력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위기가 점증할수록 대체로 시민 다수는 광장 정치보다는 제도 정치에 더 관심을 갖게 되며, 경제 문제에 대한 정치 세력의 위기 극복 능력을 요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것은 광장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 변화다. 광장에서 제기된 정치적 이슈들이 제도 정치 내지 정부 정책에 반영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일반적인 경향이지만, 정부와 여당이 계속해서 소통을 거부할 경우 이의를 제기한 시민들로서는 제도 정치에 대해 체념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정당성이 부분적으로 훼손되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광장을 통제하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방식인 한 이런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시민들로서는 현재의 광장 정치가 아니라 미래의 ‘선거 정치’를 기다리게 된다.

웹2.0 사회 핵심 가치는 탈권위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가 여전히 우리 사회의 변화를 과소 평가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민주화 시대에서 세계화 시대로 가는 점이지대에 놓여 있다. 세계화와 정보사회의 진전은 경제 및 문화 생활을 탈국민국가화하고 자발성과 유연성을 키웠다. 특히 쌍방향 소통의 ‘웹 2.0 사회’의 도래는 법치를 앞세운 권위적 통치와 태생적으로 양립하기 어렵다.

돌아보면 그래도 노무현 정부는 탈권위주의를 내걸음으로써 시대적 변화에 나름대로 대응해 왔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시대적 변화를 읽어 내고 적절히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의 거리를 스스로 넓혀 왔다. 정부에 부여된 양대 과제가 설득력 있는 정책 추진과 사회 통합 제고에 있다면, 중요한 것은 그 정책 추진과 통합 제고가 모색되는 상황과 맥락에 대한 정확한 이해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는 변화하는 사회를 제대로 독해하지 않은 채 권위주의적 법치를 강조함으로써 스스로 정당성을 훼손해 왔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여전히 30%에 머물고 있는 국정 운영 지지율이 그 증거다. 2007년 한나라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중도에 가까웠던 이명박 후보가 정작 집권 이후에는 권위주의적 법치를 고수함으로써 자신의 지지 기반을 협소화시켜 온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촛불 정국과 서거 정국에서 나타난 2008년 6월 광장 정치와 2009년 6월 광장 정치는 다른 코드로 구성돼 있으며, 그것이 놓인 상황도 다르다. 이 점에서 광장 정치의 부활을 기대했던 이들에게 최근의 흐름은 다소 당혹스러운 것일 수 있다. 오히려 올해 6월을 특징짓는 흐름은 광장 정치가 아니라 각종 시국선언으로 나타나고 있는 ‘말의 정치’이자 ‘담론 정치’다. 광장과 거리가 아니라 말과 담론을 통해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은 다시 한번 일대 격돌하고, 그 긴장을 높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지난해를 돌아보고 내년을 예견하면, 이명박 정부는 3년 내내 뜨거운 봄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2008년의 촛불 정국과 2009년의 서거 정국에 이어 내년에는 6월 2일 지방선거에 맞춰진 ‘선거 정국’이 기다리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가 대단히 뜨거울 전조는 최근 이뤄진 차기 서울시장 선거를 포함한 여론조사에 이미 잘 나타나 있다. 한나라당이 우위를 점하던 보수 우위의 구도는 서거 정국을 경유하면서 보수와 진보가 경합하는 구도로 바뀌었다. 이런 추세는 내년 선거 정국까지 이어질 수 있다.

내년엔 지방선거, 또 뜨거운 6월
결론을 맺자. 광장 정치가 지난해와 다르다고 해서 새삼 안도할 필요도 없고 내심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 촛불 정국과 서거 정국은 분명 다르지만, 정부를 포함한 정치 세력들은 현재 우리 사회가 놓인 엄중한 상황을 진지하게 직시해야 한다. ‘침묵하는 다수’가 누구의 편인가를 따지기 전에 그들의 삶이 놓인 처지를 돌아보고 그들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든, 정당이든, 지식인과 언론을 포함한 공론장이든 정파적 관점에서 벗어나 국민적 시각에서 사회 발전의 방향 및 전략에 대한 정책 대안 경쟁을 벌여야 한다.

현재 우리 정치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진정성과 포용성의 회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잘 살아보세’라는 산업화의 정치와 인권 및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고자 했던 민주화의 정치에 담긴 진정성, 그리고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 하더라도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갈등을 해소하려 했던 포용성으로부터 우리 정치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비전을 제시하고 통합을 모색하는 정치는 그 사회의 중심이다. 이 6월이 가기 전에 정부를 포함한 정치 세력들이 새로운 정치적 진정성과 포용성을 보여 주길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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