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가 실험용 쥐도 키우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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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엔트 본사에 있는 실험용 생쥐 사육실 모습. 오리엔트는 실험동물 판매 및 실험 대행 서비스를 향후 성장사업으로 키울 계획이다. [신인섭 기자]

지난 16일 서울 구로동 디지털 3단지에 위치한 오리엔트 본사.

흰색 가운을 입은 실험용 동물 사육 담당 연구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44년 전통을 자랑하는 시계 제조업체인 오리엔트 본사의 요즘 분위기다.

오리엔트가 시계사업 외에 첨단 바이오사업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회사의 매출 비중 중 첨단 바이오사업 부문은 3분의 1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바이오 전문기업인 바이오제노믹스와 합병했다. 강춘근(58)회장은 합병된 뒤 회사 경영에서 물러났다. 대신 바이오제노믹스의 장재진(44)사장이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오리엔트의 전통적인 시계 부문과 최첨단 바이오 부문의 조화 임무를 띤 장 사장은 서울대 수의학과 석사 출신이다.

그는 1991년 바이오제노믹스를 만들어 실험동물 생산.공급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도전했다. 99년에는 미국의 바이오회사인 '찰스리버'와 기술제휴를 하고, 유한양행.녹십자 등 800여개 국내 제약회사에 실험용 쥐를 공급했다.

합병된 뒤에도 실험용 쥐를 기르는 사육 장비를 개발해 일본.대만에 수출했다.

지난달 11일에는 찰스리버와 신약 개발 지원에 관한 독점 계약을 체결하고 합작법인 설립도 계획 중이다.

특히 지난 14일에는 당뇨병을 앓고 있는 실험용 쥐를 특허 등록했다. 이 쥐는 당뇨병 신약 연구용으로 쓰인다.

장 사장은 침체의 늪에 빠진 시계사업 부문 등도 정비에 나섰다. 지난해 취임 직후 수익성이 떨어진 통신기기.소형모터.진동모터 사업을 모두 정리했다. 또 시계사업 부문의 경쟁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해 시계 제품을 다양화했다.

이달 초 선보인 10만원대 패션 브랜드인 '센스'는 그 첫 작품이다.

1차로 생산한 1800여개가 전량 판매돼 2차분 제작에 들어갈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달 말에는 스포츠용 시계 브랜드인 '액티브'를 내놓을 예정이다. 또 스위스에서 만드는 고가 브랜드인 '샤갈'은 유럽.중동.중국 등에 판매망을 확충하고 있다. 바이오 시계도 계획 중이다. 자수정 등 보석으로 만든 시계를 개발하고 있다. 보석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동물 실험도 함께 진행 중이다.

장 사장은 시계 유통망도 정비할 계획이다. 전국 3000여개인 점포를 2200개로 줄이고 대신 할인점 판매를 강화할 예정이다. 이미 이마트 15개 점포에 오리엔트 단독 매장을 마련했다.

보석사업 부문도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젊은층을 겨냥한 패션 액세서리를 개발해 올 하반기 중 출시할 예정이다. 해외 명품 보석에 버금하는 고가 제품을 개발해 백화점.면세점 등에서 팔 계획이다.

그는 또 무차입 경영을 선언하고 자산 매각을 진행 중이다. 이미 본사 건물을 62억원에 매각했다. 경기도 성남에 있는 시계 공장도 팔기로 했다. 반면 중국 시계 생산공장은 설비 확충을 하기로 했다.

오리엔트는 한때 영업 부진으로 자본 감소, 주식 거래 정지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바이오제노믹스와의 합병으로 부도 위기에서 벗어나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벤처기업이었던 바이오제노믹스도 상장사인 오리엔트와 합병해 보다 쉽게 투자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장 사장은 "양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두 회사가 합병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오리엔트는 2002년 24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2003년(3월 결산)에는 4억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장 사장은 "앞으로 시계와 바이오 두 부문을 분리해 각각 단독 법인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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