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비아그라와 정자 감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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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로마제국의 멸망을 게르만족의 이동이 아니라 로마인들의 무분별한 환경파괴와 중금속오염에서 찾는 학설이 있다. 선박건조.땔감.무기제조 등을 위해 이탈리아 반도와 지중해 연안의 숲을 베어 없애고, 납용기에 넣고 끓여서 제조한 포도음료를 즐겨 마신 사회 지도층이 납중독으로 통풍에 걸려 결국 자연과 사회의 '기능부전' 이 초래돼 멸망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 귀족들은 그들 자신과 사회의 기능장애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술과 음식으로 향락을 즐기며 스스로 몰락을 향해 내달았다. 요즘 일고 있는 비아그라 선풍을 보노라면 로마인들의 허무주의적 향락 탐닉이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아그라를 복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이 발기부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장애는 표면적으로는 그의 신체적 기능이 약해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만, 깊은 원인은 다른 데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와 가정에서 진행되고 있는 남성의 왜소화, 호르몬 유사 화학물질로 인한 내분비계의 기능 혼란이 근본원인일지도 모른다. 사실 성기능과 관련해 우리가 심각하게 우려해야 할 문제는 발기부전이 아니라 환경오염으로 성호르몬 분비체계가 교란된 결과 남성의 정자수가 감소했다는 것이다.

화학물질의 세례를 더 심하게 받은 젊은이들의 정자수가 나이든 사람들의 정자수보다 현저하게 적고 그것마저도 운동능력이 부족해 대량불임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인류는 결국 대를 잇지 못해 멸종할지 모른다는 예측을 하는 사람도 있다.

상황이 이와 같이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근본적 성찰은 젖혀두고 현세적.순간적 향락만을 위해 또다시 비아그라라는 화학물질을 찾는 것이 작금의 비극적 실상이다. 도대체 정액이 제구실을 할 수 없게 돼 버렸는데 성기가 발기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신체 일부분의 고장을 화학물질로 정상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의 바탕에는 기계론적 신체관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화학물질은 체액 속에 녹아서 혈관을 통해 고장 부위에 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 이 있다.

따라서 기계를 고치듯 신체를 고친다는 발상이 계속되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결합하면 결국 신체 일부를 기계로 대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나오게 마련이다.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미세기계들을 인간신체에 주입, 인간을 완전히 '기계화' 해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인류의 최종적 진화이자 진보라는 민스키 같은 인공생명주의자들의 주장이 보편적인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기계화가 완성되면 미국에서 개발한 모든 암세포를 없앨 수 있다는 신약도 당연히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비아그라에 의지해 쾌락을 한껏 즐기겠다는 생각은 허무주의적이다.

기계가 인간을 이어받는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로 허무주의적이다. 어차피 다음 세대는 온전히 이어지기 어렵고, 기계 인간이 완벽한 기능을 가지고 인간을 계승한다면 마지막으로 쾌락에 흠뻑 빠지는 것이 덜 억울하기는 할 게다.

로마제국 말기와 중세 후기에도 그렇지 않았던가.

그러나 생명은 그 존재 자체가 당위성을 가지고 따라서 미래 세대도 현 세대와 똑같이 존재하고 삶의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요나스의 성찰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에게 시급히 필요한 것은 비아그라와 같은 '쾌락용품' 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우리 행위에 대한 철저한 반성일 것이다. 기능부전이 초래된 이유는 바로 인류의 무분별한 기술개발.자연수탈.환경파괴에 있기 때문이다.

李必烈 방송대 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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