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 '실직자 모시기'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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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많은 기업이 구조조정을 위해 다투어 인원정리에 나서고 있는 마당에 오히려 실직자들을 서로 모셔가겠다며 경쟁이 벌이는 업종이 있다.

대리점 조직을 앞다퉈 확장하고 있는 보험업계가 그 곳. 이들 보험사는 실직자들 가운데 '유능한 대리점주' 가 될 만한 '인재' 를 고르느라 바쁘다.

보험사들은 출퇴근을 원칙으로 하는 보험설계사와는 달리 자유로운 영업이 가능하고 사업자금이 크게 필요치 않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우며 명퇴자.실직자를 대상으로 대리점주를 모집하고 있다.

대리점 확보에 가장 적극적인 보험사는 교보생명으로 현재 1천3백개인 대리점을 올해말까지 2배가 넘는 3천개로 늘리고 99년엔 5천개까지 확대한다는 야심찬 목표를 잡고 있다. 흥국생명도 현재 2백여개인 대리점을 올해 안에 3배 수준인 6백여개로 늘릴 계획이다.

이미 2천개의 대리점을 확보한 삼성생명도 연말까지 3백개를 추가해 대리점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입장이고 대한.제일생명 등도 2백개 정도를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원래 대리점 위주의 영업을 해온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등 손해보험사들도 대리점을 지속적으로 늘린다는 복안이다. 이처럼 보험사들이 대리점주 모집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

첫째는 IMF체제 이후 보험해약 사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보험업계가 판매채널의 다양화로 극복하겠다는 의도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보험설계사를 통한 보험상품 판매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보다 전문적이고 장기적인 판매방식인 대리점체제로 전환하겠다는 포석이다.

또 한가지는 회사가 관리비용을 부담하는 보험설계사보다 점주가 자신의 책임아래 영업하는 대리점으로 바꾸는 것이 경비절감에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대리점주 모시기 경쟁이 벌어지면서 일부 보험사들은 창업시 합동사무실.집기비품.비서인력까지 영업에 필요한 지원을 도맡아 해주고 있다.

보험대리점에 대한 실직자들의 관심도 높다. 보험대리점을 개설하기 위해서는 보험연수원에서 매달 주관하는 인보험 대리점 자격시험에 통과해야 하는데 지난해 2백여명 수준이었던 응시자가 올들어서는 5백명 정도로 2배 이상 늘어났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실직 전선에 한꺼번에 내몰린 은행.종금.투신.리스사 등 금융업계 종사자들이 기존의 금융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보험대리점 창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yan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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