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의 세계화' 로 실직자 계급화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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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IMF체제에서 벗어나면 고 (高) 실업 문제가 해결될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달라진 세계 자본주의의 흐름 때문이다. 석학 갤브레이스의 말대로라면 과거 계획적 산업자본주의는 이제 쓰레기통 신세. 캐나다 오타와대 미셀 초스도프스키 교수는 이를 '빈곤의 세계화' '고실업의 일상화' 로 표현하고 있다.

단초는 정보통신기술을 근간으로 한 정보자본주의다. 여기에 인간의 인지력을 맞물리면 인식자본주의 개념이 등장한다. 과거 산업자본주의를 풍미했던 포디즘 (대량생산체제) 이 FMS (유연생산체제) 앞에서 맥없이 무릎을 꿇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앨빈 토플러 식으로 말하면 '제3의 물결' 에 밀린 것.

노동운동도 구심점을 잃고 말았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시민권리헌장 (시티즌스 카르타) 역시 헌신짝. 기존 지배세력에 대한 대체집단의 형성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대신 실업자들이 세로운 계급집단으로 등장할 조짐만 보이고 있다.

이를 주목하는 게 바로 인식자본주의다. 이는 기존의 제조업 또는 재래식 서비스산업으로는 획기적인 고용창출이 불가능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대신 영화.애니메이션.뉴미디어등 인간의 인지능력을 감안한 창작행위만이 고실업에 대한 대안작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다가 인식자본주의는 실업 자체를 직업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역 (逆) 발상의 논리를 내놓는다. 바로 국가 책임론이다. 그렇다고 고실업현상 자체가 해소될 것 같진 않다. 영국병이라더니 이제 자본주의병이 고질화하는 셈인가.

허의도 기자 〈huhe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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