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밤샘수사' 유혹 떨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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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강경식 (姜慶植) 전 부총리와 김인호 (金仁浩) 전 경제수석이 일요일인 3일 각각 사찰과 교회에 들른 뒤 조사받으러 검찰에 출두했다.

'밤샘수사' 자제방침과 함께 이들에 대해 3~4일째 '출.퇴근 수사' 를 하고 있는 검찰이 일요일인 3일에는 소환시간을 오전11시 이후로 잡아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과거 통치권자나 수뇌부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수사때마다 주요 피의자를 소환해 밤샘조사를 거쳐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던 중수부의 관행 (?)에 익숙해진 기자들에게 이날의 '신앙활동후 검찰출두' 는 이변으로 비쳐지기에 충분했다.

검찰이 이처럼 피조사자에게 종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물론 이들의 신분에 대한 고려도 있었겠지만 더 큰 이유는 최근 권영해 (權寧海) 전 안기부장의 할복사건과 이번 사건 수사중 발생한 기업체 간부의 자살기도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비록 이번 밤샘조사 자제방침이 자해사건을 희석시키려는 수습책의 하나였던 성격도 없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검찰 이미지와 국민인권신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악재를 제도개선의 호기로 삼으려는 상급자들의 생각과 달리 일부 검사들은 "절차보다 결과가 더 중요하다" 는 생각을 내비치고 있어 모처럼 싹트려는 검찰의 적법절차 준수의지가 앞으로 꽃망울을 띄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

최근 검찰의 강압적 밤샘수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수사하지 말라는 거나 마찬가지" 라며 밤샘조사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주장한 일부 목소리가 바로 의문의 출발점이었다.

물론 대형사건 때마다 제한된 시간에 수많은 참고인과 회계장부 등을 검토해야 하는 수사검사들과 수사관들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피의자들이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밤샘조사가 필요하다" 는 일부 검사들의 주장은 마치 "큰 범법을 척결하는데 사소한 불법이나 편법은 괜찮지 않느냐" 는 것같아 뒷맛이 씁쓸하다.

김정욱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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