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 기자의 오토 포커스] GM, M&A 치중하다 미래 투자 소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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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GM이 1일 결국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GM의 파산보호 신청은 예견됐던 것이어서 세계 주식시장에 큰 악재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설마’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GM의 몰락을 보면 여러 가지 곱씹어 봐야 할 부분이 많다. GM은 1955년부터 발표된 포춘의 ‘세계 500대 기업’에 37차례나 1등에 올랐던 세계 최고 기업이었다.

이런 회사가 몰락한 원인으로 강성 전미자동차노조(UAW)를 탓하는 전문가도 많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경영자의 책임이 크다. GM은 우선 상품성이 떨어졌다. 강성 노조는 생산성을 저하시키고 경영에 부담을 줬지만 파산으로 몬 ‘주범’은 아니다. GM의 몰락이 강성 노조 때문이라면 현대·기아자동차는 벌써 쓰러졌을 것이다.

2000년 이후 미국 소비자는 GM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렌터카로 GM 차를 몰아 본 사람은 ‘이런 차를 샀다가는 큰 손해를 볼 뻔했다’고 말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였다.

GM은 80년대 이후 값싸고 품질 좋은 차를 만드는 것보다 금융회사처럼 ‘머니 게임’에 치중했다. 릭 왜고너 전 회장으로 대표되는 하버드대 경영학 석사(MBA) 출신의 재무통이 요직을 장악하면서다.

경쟁력 있는 좋은 차를 개발해 기술을 축적하기보다는 손쉬운 인수합병(M&A)을 택했다. GM은 90년대 초 도요타 등 일본 업체에 소형차 시장을 내줬다. 그러자 GM 경영진은 ‘이익이 별로 남지 않는 소형차는 포기하고 이익이 많은 대형차와 픽업트럭에 집중하겠다’고 판단했다. 대신 GM은 일본 소형차 업체인 스즈키 지분 20%를 인수하는 방식을 썼다. 소형차 개발은 스즈키가 전담하도록 했다. 소형차를 제조하는 생산기술 축적을 소홀히 했다. 이런 식으로 5~6개의 브랜드를 사들였다. 한 건마다 수조원이 들어간 M&A로 친환경차 개발 등 미래를 위한 투자 재원이 고갈됐다.

2005년부터 친환경차 붐이 일고 석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GM은 그제야 미래 기술 개발에 눈을 돌렸다. 상품 개발의 대가로 평가받는 밥 러츠(올 초 은퇴)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 줘 상품성 개선에 나섰다. 그러면서 가능성을 보여 준 차가 나왔다. 대표적인 게 캐딜락 CTS와 라세티 프리미어(시보레 크루즈)다. 탁월한 디자인뿐 아니라 실내 마무리 등에서 옛 실력을 보여 줬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지난해 하반기 몰아닥친 세계 금융위기가 결정타였다. 한때 지구상의 강자였던 공룡이 예상치 못한 기후변화에 멸종한 것처럼 GM은 한순간에 붕괴하기 시작했다.

이제 GM은 불량 자산을 버리고 우량 자산만 남긴 ‘뉴GM’으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세단 중심의 시보레·뷰익과 프리미엄 브랜드인 캐딜락, 픽업트럭과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위주의 GMC 등 네 개의 브랜드다. 이런 뉴GM이 제조업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다면 미래는 분명히 있다. 1등을 해 봤던 흔치 않은 경험과 팔릴 만한 차를 만들었던 능력이 있어서다.

또 생산성을 갉아먹던 UAW도 당분간 무파업을 약속하지 않았던가. GM의 몰락은 ‘제조업은 무엇을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시사점을 남겨 줬다. 앞으로 뉴GM이 멋지게 부활한다면 ‘전략에 능한 미국 경영의 승리’라는 또 다른 교훈까지 주지 않을까.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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