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이봉주 개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마라토너는 뛰어야 행복하다.발바닥에 달라붙는 아스팔트의 단단한 촉감에서 진정한 삶의 희열을 느낀다.

간장 속의 글리코겐이 다 타고 쌓인 젖산이 팔다리를 옥죄는 고통 속에서도 반드시 가야할 목표가 있어 힘이 솟는다. 한국마라톤의 대표주자 이봉주 (28.코오롱) .그는 지난 19일 로테르담마라톤대회에서 이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에게 지난 1년여는 짙은 어둠 속의 시간이었다.애틀랜타올림픽에서의 은메달과 곧 이은 후쿠오카마라톤 우승. 그는 이 두 대회를 거치면서 한국마라톤의 대표주자로 자리를 굳혔었다. 그러나 한국마라톤의 모든 기대가 그의 어깨에 놓이는 순간 그에게는 뜻하지 않은 부상이 찾아왔다.

마라톤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오른쪽 무릎과 다리근육까지 다친 것. 그저 묵묵히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던 것이 오히려 화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성적도 급전직하했다.

2시간14분대의 초라한 성적에 박수를 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더구나 그의 부진과 함께 후배 김이용 (25.코오롱) 이 빠른 속도로 그를 추격해 왔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적은 그의 내부에 있었다.28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앞날 걱정도 생겼고 훈련으로 점철된 따분한 생활에 나태함도 그의 마음을 파먹어 들어갔다. 이제 그의 재기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지난 8일 그가 출국할 때도 분위기는 조용했다.큰 희망을 보이는 사람들도 적었다.

그러나 그는 이 대회에서 평소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모든 고통의 기억을 쏟아냈다.2시간7분44초의 한국신기록은 그렇게 나왔다.

22일 오전9시40분. 그는 출국때와 달리 수많은 보도진과 환영인파에 휩싸인 채 금의환향했다.어머니 공옥희 (63) 씨를 껴안는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과 세계신기록 경신을 반드시 이루겠다" 는 각오를 보였다.

왕희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