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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강공 땐 ‘하드랜딩’ 불가피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북한의 핵실험 카드가 심상치 않은 여진을 몰고 오고 있다. 한·미 양국 군은 북한에 대한 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을 3단계에서 2단계로 강화했다. 미국은 향후 북핵정국을 어떻게 풀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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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을 예방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사이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김숙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양제츠 외교부장,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바라다브킨 러시아 외교부 차관,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지난 5월 25일 오후 평양 중심가 창광거리에 위치한 조선중앙증권거래소. 주식시세 전광판을 쳐다보던 투자자들이 낙담한 표정으로 술렁였다. 종합지수인 ‘만경대지수’가 50포인트 이상 빠지며 폭락한 상황이었다. 낮 12시쯤 관영 중앙통신으로 발표된 ‘오전 9시54분 추가 핵실험’ 보도는 평양의 주식 투자자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중국·러시아 북한 감싸기 어려워 … 북한, 대남 돌출행동 경제에 위험 요소” #2개의 쇼크, ‘경제 패닉’은 없다 - 북한 핵 어떻게 풀까?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가 시행되면 경제가 다시 꽁꽁 얼어붙을 게 뻔했다. 같은 시각 평양 근교의 특각(별장)에서 케이블 TV로 주식장세를 지켜보던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부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 오빠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무실에 들렀다가 핵실험 계획이 담긴 비밀문건을 보고 난 뒤 곧장 한국의 포스코 격인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주식을 비롯한 보유분 대부분을 팔아치운 때문이었다.”

함경북도 풍계리에서의 핵실험 감행이 평양의 증시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진다는 상황설정이지만 이런 일은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다. 북한에는 주식을 거래할 증권시장이 없다. 철저한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라는 점에서 핵실험 같은 요인에 따라 경제가 출렁이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은 1994년 ‘서울 불바다’ 발언을 비롯해 과거 전쟁위협 때마다 재미를 톡톡히 봤다. 증시폭락을 필두로 외국자본이 빠져나가는 등 남한의 경제가 휘청거리고 시민들이 라면과 쌀을 사재기하는 혼란이 벌어진 때문이었다. 이번 북핵 실험은 달랐다. 핵실험이라는 메가톤급 악재가 불거졌는데도 당일 종합주가지수(KOSPI)는 2.85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쳐 1400선을 지켰다.

핵실험 사실이 알려지자 장중 한때 6% 이상 급락하기도 했지만 마감 전 회복했다. 언론들은 특히 외국인 투자자가 2000억원 이상 순매수를 기록한 대목에 의미를 부여했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에게도 북한의 핵실험 이슈가 더 이상 투자에 장애요소로 부각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다.

지난 4월 5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당일 코스피는 오히려 상승했고, 이튿날에도 전날보다 14.10포인트 올라 연속 상승을 이어간 것과 맥을 같이하는 움직임이다. 그렇지만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일이 2006년 10월 첫 실험 이후 2년7개월 만에 꺼내든 핵실험 카드는 심상치 않은 여진을 몰고 오고 있다.

핵실험에 때맞춰 단거리 미사일의 산발적인 발사가 이어졌고 북한의 군부는 “강력한 군사적 타격을 하겠다”며 긴장분위기를 조성했다. 한·미 양국 군은 북한에 대한 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을 3단계에서 2단계로 강화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꼬였던 남북관계가 긴장을 넘어 파국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와 시장은 군사적 충돌이 실제 벌어지거나 국지전으로 치닫는 상황이 초래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핵실험의 묘한 타이밍에도 관심이 쏠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분위기가 한창 달아오르던 시점에 핵실험이란 변수를 던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핵실험 4시간 전 노 전 대통령의 유족에게 중앙통신을 통해 조전을 보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10·4 선언을 발표했던 파트너인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태도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집권 초기 김대중 정부의 정상회담 관련 대북송금 특검을 용인한 데 대한 뒤늦은 보복 아니냐는 농 섞인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조의표명과 핵실험을 전혀 다른 차원의 현안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핵실험 프로세스에 대남 변수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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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북핵 6자회담 중 한국과 미국 대표인 김숙(왼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이에서 회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북한 핵실험은 미국 압박카드”

북한의 핵실험이 미국과의 담판을 겨냥한 협상카드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지난 2월 출범 이후 평양에 제대로 눈길조차 주지 않아온 오바마 행정부에 북한이 핵실험이란 초강수를 뒀다는 얘기다. 북한은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에 적잖은 기대를 걸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체제에서 북한은 ‘폭정의 전초기지’나 ‘폭군’으로 낙인찍혔고 극도의 체제위협을 받고 있다는 피해망상에도 시달려야 했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북한은 미국에 대한 유화 제스처를 본격화했다. 공화당 정부보다 오바마의 민주당이 훨씬 북한에 대해 우호적이고 유연하게 나올 것이란 기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지난 2월 방한 때 “북한이 후계문제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 북한이 대꾸조차 하지 못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후계 등 김정일 관련 비판에는 “감히 우리의 최고 존엄을 걸고 들었다”는 극렬한 비난을 퍼붓던 기존 태도에서 확 달라진 것이다.

“북한이 (내 발언에)반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클린턴 국무장관이 고압적 태도를 보였지만 북한은 끝까지 침묵했다. 하지만 북한의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태도에 최근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5월 5일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의 현 행정부가 ‘변화’와 ‘다무적 협조외교’에 대해 떠들며 요술을 부리고 있지만 자기의 비위에 거슬리는 나라들을 힘으로 압살하려고 광분했던 이전 행정부와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부시 정권과 오바마 정권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메시지로 실망감을 드러낸 것이다.

핵실험 이틀 뒤인 5월 27일 북한군 판문점대표부 성명은 “오바마를 비롯한 미국의 현 집권자들”이란 표현을 써가면서 미 정부를 비판했다. 오바마에 대한 불만을 한층 더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북한의 이번 핵실험은 미국으로부터 핵 보유국 지위를 확보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북·미 평화협정 체결이나 평양·워싱턴 연락사무소 개설, 수교 같은 프로세스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통일연구원 조민 연구위원은 “북한 통치층은 핵무기만이 대내외적으로 확실한 체제보장을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며 “미국의 안보우려를 자극하지 않는 수준에서 소수의 핵 보유 용인을 전략적 목표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로켓발사에 대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이란 초강경 카드를 맘껏 휘두르고 나선 건 과거 미국 등 국제사회의 미온적인 태도도 한몫했다. “북한의 핵 보유는 일리가 있다”는 등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이뤄진 한국의 대북 유화적 행보도 가세했다. 북한은 이런 틈을 비집고 들어 특유의 벼랑 끝 전술을 구사했고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부시 행정부 말기인 2008년 10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지는 협상에 성공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북한의 대미 협상술은 일단 긴장을 고조시킨 뒤 이를 극대화하는 도발과 북·미 양자 간의 대화돌입, 사태해결의 과정을 거치는 패턴을 보여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미국 행정부가 북한에 대화와 협상을 제안하는 기간이 점차 짧아지고 있다는 게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4월 만든 ‘북한 로켓발사의 영향과 대응전략’이란 자료의 분석이다. 93년 5월 노동1호 미사일 발사 때는 17개월 만인 94년 10월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를 통해 해결됐다.

또 98년 8월 대포동1호 발사 때는 1년여 만인 99년 9월 북·미 베를린 합의가 나왔고, 2006년 10월 핵실험 때는 3개월 만인 이듬해 1월 베를린 합의와 2월 2·13합의가 도출됐다. 북한은 4월 초 로켓 발사에 이어 한 달여 만에 핵실험을 전격적으로 시행했다. 미국의 관심을 끌 핵·미사일 도발에서 협상 테이블에 이르는 시간을 과거보다 더욱더 당겨보려 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하지만 이번 핵실험의 경우 미국의 대북 분위기는 녹록잖아 보인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27일 “상응하는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안보리도 격앙된 반응 속에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 특히 김정일 위원장 일가의 금융계좌 동결과 여행제한 등의 조치를 거론하고 있다.

외교 당국자는 “미 국무부 관계자들이 2006년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계좌 동결 때 ‘우린 살짝 팔을 비틀었을 뿐인데 북한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며 “그만큼 금융제재가 북한에 고통스러운 일임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핵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기본인식에서도 강경대응을 예상할 수 있다.

그는 취임 전부터 북한의 핵 포기만이 아닌 미국 스스로도 핵을 폐기할 것이란 점을 공언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때문에 정신이 없는 틈을 타 자신의 집권 청사진 중 핵심인 핵 문제 해결에 전면 도전하는 북한에 오바마가 어떤 제재카드를 꺼낼지가 관심거리다.

북한 정권에 대한 미국 인내심 시험 중

향후 대북제재는 미국 주도로 유엔과 한국·일본 등이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가 변수가 되겠지만 과거 핵·미사일 제재와 달리 북한 감싸기에 적극 나서기 어려운 입장에 있다. 대북제재의 경우 일단 유엔안보리의 논의를 거치며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담은 조치가 취해지게 된다.

북한이 대북제재 움직임 속에 핵·미사일 관련 행보를 계속할 경우 충돌을 빚을 수도 있다.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도 전면 참여를 선언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따라 의심물질·장비를 운반하는 북한 선박에 대한 검문·검색이 이뤄지면 북한이 돌출행동을 벌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박이 극도에 달할 경우 북한이 대남 군사도발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게 우리 정부 당국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극적 타결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오바마 행정부와의 양자담판을 희망해 왔다는 점에서 일정기간 긴장 국면을 거친 뒤 대화가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2007년 1월에는 북·미 간의 베를린 비공개 접촉을 통해 6자회담이 열리고 2·13합의가 도출되는 프로세스를 밟았다. 이번의 경우 6자회담 테이블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한 북한을 끌어당기는 역할을 의장국인 중국이 맡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격적인 핵실험으로 김정일은 우리의 현충일 격인 메모리얼 데이 연휴를 즐기던 버락 오바마를 깨우는 데는 성공했다.

그렇지만 오바마의 대북 성명은 강경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북한 정권에 대한 미국의 인내심이 어디까지일까 하는 점이다. 협상에 의한 북한 비핵화가 어렵다는 판단이 섰을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 간판을 내려야 할 정도의 강력한 압박이 김정일 정권에 가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데 이번 북핵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김정일은 미 자본주의를 좋아해

‘핵 카드’ 든 북한 뭘 원하나?

맥도널드는 코카콜라와 함께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다. 그런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맥도널드 햄버거를 거론하며 평양에 햄버거를 보급하도록 지시했다. 평양방송 보도에 의하면 김 위원장은 2000년 9월 노동당의 한 고위간부를 불렀다.

그러고는 햄버거 얘기를 꺼냈다. 김 위원장은 “나는 이 빵에 못지않은 고급 식빵과 감자튀기(튀김)를 우리 식으로 생산해 대학생들과 대학교원·연구사들에게 공급할 결심”이라고 말했다. 해당부서는 발칵 뒤집혔고, 1호 지시(김정일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한 작전이 시작됐다.

결국 김일성종합대학을 시작으로 북한에 ‘고기겹빵’이란 이름으로 북한판 햄버거가 퍼져나갔다. 김 위원장은 이후에도 “고기겹빵 생산공장을 크게 건설하고 공장에 최신식 빵 설비를 갖추는 등 대담하고 통 크게 일을 벌이라”고 지시했다는 게 평양방송이 전한 내용이다.

김 위원장이 특정 상표까지 거론하고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가 함께 제공된다는 점까지 챙기고 있다는 것은 그가 미국 사정에 상당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자신의 집무실과 관저에 남한 TV뿐 아니라 CNN과 NHK 등 위성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춰놓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을 비롯한 외부세계의 움직임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누구보다 미국의 힘을 절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핵·미사일 카드로 사활을 건 대미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도 미국과의 관계개선 없이는 북한체제의 생존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란 것이다.

김 위원장은 1994년 10월 북·미 간에 제네바 핵 합의가 성사되자 반색했다. 당시 협상대표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을 평양 순안공항까지 나가서 맞았다는 얘기까지 있고, 강 부상은 아직도 중용되고 있다. 2000년 10월에는 조명록 총정치국장을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에 보내 빌 클린턴 대통령과 면담케 했다.

곧이어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을 평양에 초청해 자신이 직접 만나는 대담한 대미 접근을 했다. 하지만 이듬해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북한 주민들은 요즘에도 미국에 대해 ‘미 제국주의는 승냥이’ ‘불구대천의 원수’로 사상교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최고지도자 김정일은 핵·미사일 카드를 들고 초강대국 미국과 잘 지내는 법에 골몰하고 있다.

이영종 중앙일보 정치부문 기자·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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