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부농됐다]3.포철연구소 직원서 목장주된 최광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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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충북보은군마로면관기2리 최광언 (崔光彦.45) 씨의 한우 축사는 농고 실습생이나 새내기 영농후계자들로 늘 붐빈다.그의 첨단 축산영농을 배우기 위해서다.

崔씨의 축산 기법은 남다르다.우선 컴퓨터로 소 한마리 마다 질병 상태와 수정.분만일 등을 철저히 관리한다.이렇게 하면 훨씬 생육상태가 좋아지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축사에 비가 들어오지 않게 지붕.바닥 구조를 직접 설계, 질병예방 및 고급육 생산에 효과를 보고 있다.또 번식우에게 수입사료 대신 쌀겨.깻묵 등을 이용한 자신만의 독특한 사료를 먹여 생산비를 30% 가량 줄였다.

崔씨의 전 직장은 포항제철 산업과학기술연구소. 포항전문대 금속공학과를 나와 80년부터 92년까지 줄곧 그 곳에서 일했다.퇴직 직전 연봉 2천6백만원으로 당시로선 괜찮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꿈꿔온 '목장주' 가 되기 위해 자신과 부인 具길선 (45) 씨의 고향인 관기2리로 귀농을 결심했다.

직원 6백여명 가운데 석.박사가 80%에 이르는 직장의 특수성 때문에 연구원으로서 앞날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도 작용했다.부인은 친정 부모와 가까운 곳에 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쉽게 동의했다.

상사와 동료의 만류 속에 퇴직한 崔씨는 곧바로 장인 소유의 집터에 새로 집을 지어 이사했다.퇴직금 등을 모은 8천여만원을 자본으로 92년 겨울 전국의 축산농가를 돌아보며 차근히 영농설계를 했다.

이듬해 6월 드디어 손수 지은 2백30평짜리 번식우 축사에 암소 20마리를 입식했다.여기에 들어간 돈은 6천여만원. 생활비 마련을 위해 논 5천평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부친이 식당을 운영해 농사라곤 모르고 자랐던 崔씨는 손발이 갈라지게 일하며 소먹이로 배합사료 대신 신선한 풀을 베어 먹였다.이런 노력 덕분에 94년 영농 후계자로 선정돼 축산장려 자금을 얻어쓰고 경험도 쌓이면서 그의 '사업 기반' 은 튼튼하게 다져졌다.

얼마 못버틸 것이라고 비웃음 치던 주변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졌다.현재 사육두수는 모두 66마리. 그는 지난해 기름.사료값 폭등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4천1백여만원의 소득을 올렸다."소값이 좋아져 올해엔 훨씬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 이라고 기대하는 崔씨는 "앞으로도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 '프로 농사꾼' 이 되겠다" 고 포부를 밝혔다.

보은 = 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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