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개방 대책 부처 손발 안맞아 현장에선 간곳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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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이 겉돌고 있다.정부 대책은 요란하지만 막상 현장의 분위기는 과거와 달라진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국제통화기금 (IMF) 등의 강력한 요구로 도입된 정리해고제부터가 그렇다.정부는 지난 2월 노사정 (勞使政) 합의에 따라 근로기준법을 고쳐 정리해고제를 법에 명문화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계가 '노조와의 성실한 협의' 라는 모호한 규정을 근거로 정리해고제를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있는데도 정부는 "개별노조 문제에 간섭할 수 없다" 며 팔짱만 끼고 있다.노동부는 한술 더 떠 "노조와 성실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정리해고는 부당 노동행위로 엄단하겠다" 고 나서 외국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H자동차의 일시 대량감원 방침에 대해서도 노동부는 '자제 촉구' 라는 명목으로 개입하고 있다.문제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국내 대상기업을 물색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가 과잉인력이란 점이다.

이 문제의 해결방안이 법적.제도적으로 분명히 보장되지 않고서는 성사가 어려울 것이란게 한 외국 컨설팅회사 관계자의 얘기다.독일계 증권사 金모부장은 "외국인들이 국내기업 인수.합병 (M&A) 때 가장 신경쓰는게 노조 문제" 라며 "이스라엘 이스카사에 대한중석 초경합금 부문을 매각하려던 일이 노조 파업 등으로 무산된 사례나 최근 기아차 노조의 파업 등이 외국인들에게 줄 충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고 지적했다.

공기업 민영화도 마찬가지다.실업.금융산업 구조조정 대책 등에 쓸 재원을 마련하자면 공기업을 팔아야 하는데 현재로선 외자유치 없이 민영화는 힘든게 현실이다.

그러나 외국인 M&A 때마다 공기업 노조가 제동을 걸고 나오면 민영화는 물건너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종법무법인 김두식 변호사) .부처마다 경쟁적으로 '원스톱 서비스'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중요한 각종 인.허가 일괄처리제는 부처간 이견 (異見) 으로 원칙 수준에서 한발짝도 못나가고 있다.재정경제부 관계자는 "1백여단계의 인.허가를 일괄처리토록 하자면 건축법.공업배치법 등 40여개 법률을 고쳐야 하는데 인.허가권을 가진 부처의 반발이 심해 방향만 정했을뿐 구체적인 시행계획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고 털어놓았다.

외국인 투자제한 업종도 현행 42개에서 20개 안팎으로 줄이겠다고 했으나 부처간 의견이 엇갈려 난항을 겪고 있다.경제환경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정부의 늑장 대응도 문제다.

대표적인 예가 M&A에 대한 심사기준. 세계은행이 자금을 대주며 정부에 요구한 것 중 하나가 '독과점을 심화시키는 M&A는 엄격히 제한하고 허용할 경우 투명한 기준을 제시하라' 는 것이었다.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아사태에 발목이 잡혀 아직도 내부입장조차 정리하지 못한 상태다.

최근 쌍용제지를 인수한 P&G에 대해 공정위가 심판을 미루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외국에선 보편화된 제도인 '지주 (持株) 회사' 도 그동안 '절대불가' 입장만 고수하다 대통령의 ASEM 순방중 유럽 투자가들이 문제로 지적하자 뒤늦게 도입 여부에 대한 검토에 나서 빈축을 사고 있다.

정경민·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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