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중도금 대출 깐깐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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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달 인천의 한 아파트에 청약해 수십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첨된 한모(41·자영업)씨. 그는 아파트가 완공되면 들어가 살 생각이었지만 고민 끝에 분양권을 팔기로 했다. 한도(분양가의 60%)까지 중도금 대출을 받을 생각이었으나 은행이 신용도가 낮다며 40% 이상은 안 된다고 해서다. 한씨는 “1~2년 내에 차액(20%)인 1억원여원을 마련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며 “1년 뒤 분양권 전매 제한 기간이 끝나면 팔기로 했다”고 말했다.

주택 수요자들이 아파트에 청약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게 있다. 바로 자금 동원 계획부터 제대로 세우는 일이다. 은행들이 중도금 대출 심사를 부쩍 강화하면서 중도금 대출을 받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시행·시공사 연대보증만으로 법정 한도까지 경쟁적으로 대출해 주던 은행들의 태도가 싹 바뀐 것이다.


우선 대출 금액이 많이 줄었다. 분양대행업체인 ㈜건물과사람의 박찬구 이사는 “은행이 계약자의 소득 수준과 신용도를 따지기 시작한 이후 분양가의 60%까지 대출받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출이 아예 안 될 수도 있다. 청라 한화꿈에그린 중도금 대출을 맡고 있는 우리은행 검단신도시지점 김기순 대리는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신용불량자만 아니면 중도금을 빌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신용카드 금액이 한 달이라도 연체됐으면 대출이 어렵다”고 말했다.

대출이자(양도성예금증서금리+가산금리)도 많이 올랐다. 대림산업 금융팀 신백호 차장은 “양도성예금 금리가 내렸지만 1% 미만이던 가산금리가 지금은 2%대여서 금리 부담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출이자 외에 신용도에 따라 연 0.2~0.5%를 별도 수수료로 내는 주택금융공사의 보증서를 요구하기도 한다. 2억원짜리 보증서를 0.5%에 받았다면 대출이자 외에 연 100만원을 더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중도금 대출이 자칫 부실화할 가능성에 대비하겠다는 게 은행들의 의도다. 부동산시장이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만 상황을 낙관하기 이르다는 판단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미분양이 여전히 많고, 이것이 시행·시공사 부도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중도금 대출은 특히 담보가 없기 때문에 계약자의 소득 수준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중도금 대출 한도가 줄면 수요자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차액만큼 제2금융권 등에서 더 비싼 이자를 내고 자금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면 은행권보다 최소 2%포인트 이상 비싼 연 8~10%의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중도금 30%를 제2금융권에서 빌린다면 입주 때까지 이자부담이 최소 1000만원은 더 들어가는 셈이다. 그나마 담보가 없으면 대출도 안 돼 어쩔 수 없이 분양권 상태로 팔려는 계약자가 적지 않다. 한씨도 저축은행을 통해 차액을 마련하는 방법을 고려했지만 담보로 제공할 집이나 땅이 없어 거절당했다.

중도금 대출 한도를 늘리려면 기존 대출의 원금을 갚거나 줄이고, 신용카드·대출이자가 연체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연체가 있다면 우선적으로 풀어야 한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청약에 앞서 은행을 찾아 자신의 소득 수준이나 신용도에 따른 대출 한도를 미리 알아보고, 이에 맞춰 자금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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