部處들 따로놀아 총 1조 규모 기술지원금 혈세 낭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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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대전에 있는 건설장비 제조업체 S사는 지난달 대전.충남 중소기업청에 중소기업기술혁신개발자금을 신청했다가 탈락했다.

이유인즉 이 돈은 '고졸 이상 해당분야 경력 5년 이상' 인 경우에만 지원토록 돼있는데, 이 회사 사장 호 (扈) 모씨는 고교중퇴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 扈씨는 "회사가 기술을 개발하는데 왜 사장 학력이 문제가 되는지 알 수 없다" 고 탄식했다.

정부가 운영하는 각종 기술개발 지원자금 운용이 엉망이란 지적이 높다. 부처간 조율이 안되다보니 중복.과당 지원이 많고 모호한 기준때문에 아까운 국민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사업선정과 평가가 동일 기관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공정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과 함께 개선책에 대한 요구가 높다.현재 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과학기술부.중소기업청 등 정부 부처가 산업기술 향상을 위해 운영중인 자금은 약 1조원에 이른다.

◇ 중복지원 = 복권제조업체 K사는 95년부터 1년여동안 같은 사업으로 정통부.산자부 등 4개 부처로부터 기술개발자금을 27억원이나 지원받았다가 뒤늦게 드러나 문제가 됐다. 지원작업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다 그나마 자료가 데이터베이스화 돼있지 않기 때문. 산자부는 데이터베이스 전산망시스템을 지난달부터 시험가동중이지만, 지금까지 수작업으로 이뤄진 연간 2천여건의 지원내역을 일일이 확인하기는 쉽지 않아 본격적인 활용은 내년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 선정.평가의 공정성 시비 = 현재 정부지원 기술개발자금은 공업기반기술개발사업.정보통신연구개발.산업디자인기반기술개발 자금 등 13개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 정부부처 산하단체.출연기관에서 관리운영과 평가업무를 겸하고 있는데 선정에서부터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공업기반기술개발의 경우 주로 산업기술정책연구소에서 교수.국공립연구기관 등의 전문인력 2천4백명중에서 건당 7~8명의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선정을 위임하고 있다.

그러나 1천군데가 넘는 신청업체의 기술을 정확히 평가하기엔 인력.시간적으로 무리가 많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청의 경우 지방청의 1차 심사에서 20% 정도가 탈락하지만 선정과정에 주관적 요소가 많다는 것. 지난해엔 선정업체중 20여개가 부도나는 바람에 탈락업체들의 항의가 잇따르기도 했다.

벤처기업협회 유용호 (柳龍昊) 실장은 "지원업체 선정에 비즈니스 마인드가 부족해 시장성에 대한 판단보다 기술측면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고 말했다. 산자부 관계자는 "탈락업체의 이의가 들어오면 재심 기회를 주고 있다" 고 말했다.

◇ 너무 적게 준다 = 중기청의 중기 기술개발혁신자금은 지난해 1천6백35개 업체가 신청했으나 6백66군데만 혜택을 받았다.그나마 지원규모도 업체당 평균 4천5백만원으로 신기술 개발엔 너무 적다는 지적이 높다.

또 부처에 따라선 신청후 선정까지 몇달씩이나 걸리는 바람에 제때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기업도 있다.

박영수·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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