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안기부]37년만의 대변신 "양지서 일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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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안기부부터 개혁하라. "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이종찬 (李鍾贊) 안기부장은 칼을 빼든 지 한달반여만에 1단계 개혁작업을 마쳤다.'개혁이 아닌 보복' 이라는 등 내부 일각의 거센 반발과 우여곡절을 거친 끝이다.지난주말로 인적청산과 조직정비를 매듭지은 안기부를 들여다본다.

안기부가 오명 (汚名) 과 불명예로 얼룩진 구각 (舊殼) 을 도려내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막강 권력을 행사했던 탓에 체감고통은 더 가혹한 듯하다.이종찬 안기부장이 취임 직후 주도한 개혁드라이브는 전면적이고 초강도다.

김대중 대통령이 개혁의 첫 대상으로 안기부를 찍은 만큼 어느정도 예상은 됐었지만 실제상황은 가위 '혁명적' 이다.한칼에 9백명 가량이 날아가 전체적으로 10% 이상 줄어들었다.지난 61년 창설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한마디로 '피의 숙청' 으로 불렸던 5공 초기를 능가하는 인적청산이자 여야간 정권교체의 현실을 절감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안기부측은 내부감사에서 밝혀진 북풍공작과 부정비리 관련자, 상습적 인사청탁자, 김현철 (金賢哲) - 김기섭 (金己燮) 등 특정인맥.세대교체 대상자가 주 (主) 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조직도 국내정치 위주에서 대공.외사.산업경제 중심으로 대폭 축소개편됐다.정보화시대에 맞게 뜯어고치되 '작지만 강력한 안기부' 를 지향하고 있다.국내담당이던 1차장이 2차장으로 조정되고, 해외담당 2차장이 1차장으로 올라섰다.또 해외분야에 국제정책실과 정책정보실 등이 신설.보강됐다.

반면 국내분야는 인원이 30% 이상 줄고 기구도 대폭 축소되는 등 전면 수술됐다.3차장과 3명의 특보 (차관급) 를 비롯, 윤홍준 (尹泓俊) 건으로 구속된 이대성 (李大成) 씨가 맡았던 102실 (해외조사실) 등 총 10여개 부서가 폐지됐다.

특히 정치공작.사찰전담으로 지목됐던 정치처와 지역처가 한단계 밑인 과로 통폐합되면서 인원이 절반으로 줄었을 뿐 아니라 구성원도 전원 교체됐고 활동부서는 분석국으로 통합됐다.부처간 이견.알력조정이라는 명분으로 정부부처.정당.사회단체.언론기관 등에 파견됐던 조정관제는 업무연락만 맡는 연락관제로 대체됐다.

스스로 격을 낮추고 임무를 제한함으로써 정치사찰.공작등 폐해를 제도적으로 방지하겠다는 것이다.여권 핵심부는 "인적청산과 제도정비를 요체로 한 안기부 개혁은 이제 큰 줄기는 잡았다" 는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문제는 간단치 않다.여권이 정치적 곤경에 빠질 때 느낄 수 있는 정치개입의 유혹을 과연 어떻게 뿌리치느냐는 점이다.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안기부 내부 의식개혁 역시 만만찮은 과제다.구성원 스스로의 의식개혁 없이는 안기부 개혁이 공염불에 불과할 것임은 뻔한 이치다.또 민간 정보기구와 공개적 경쟁이 불가피해짐으로써 경쟁력에서 우위를 확보할지도 관심이다.

대북정보의 미국 의존에서 탈피하기 위해 정보장비의 첨단화와 통일 이후를 대비한 인력양성도 시급한 과제다.이종찬부장은 "정치적 중립이 확보된 순수한 정보기관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 임을 강조하고 있다.

정권유지 도구가 아니라 국가안보와 국익을 책임지는 최고정보기관으로 거듭 태어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안기부는 지금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문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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