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본선 리그' 솔직한 청년 이세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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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기 왕위전 본선 리그
[제8보 (111~128)]
黑.안조영 8단 白.이세돌 9단

이세돌9단은 날카롭고 예민하면서도 전형적인 고양이과의 사나움과 패기를 갖고 있다. 외모나 성격.기풍이 다 그렇다. 대화를 나눠보면 매우 솔직하고 숨김없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오랜 도장 생활을 하자면 선배들의 눈치를 보게 마련이지만 이세돌에겐 그런 그늘이 없다.

솔직하다는 것은 내 속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상대에게 처분을 맡기는 것이므로 상대방을 편하게 해준다. 하지만 세상이란 그리 녹록지 않아서 솔직함을 불편하게 여기는 경우도 많다. 이세돌9단에 대한 바둑계의 찬반도 여기서 갈리는 것 같다.

안조영8단의 시계는 어느덧 몇분 남지 않았다. 4시간의 제한시간을 벌써 다 써버렸다. 국면은 심각하다. 백△로 위협했으나 안조영은 111로 꽉 이어 패를 불청하고 있다. A로 덮어씌우면 흑▲ 석점이 잡히는 일촉즉발의 형세. 이세돌의 성격으로 봐 기왕 패를 썼으니 눈감고 A로 씌울 것이란 해석도 있었으나 이세돌은 3분 정도 생각하더니 112로 싹싹하게 물러선다.

흑▲들을 잡으면 우상 백대마도 흑B로 다 잡힌다. 이 교환은 명백하게 백의 손해여서 '성격'으로 결판날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127에서 안조영은 초읽기에 몰렸다. 직후 떨어진 이세돌의 128은 우상 흑 전체를 노린 칼을 품은 한 수. 그러나 김수장9단 등 검토실의 기사들은 '참고도' 백1이 대세점이며 이렇게 유유히 두어도 백이 충분하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21살 이세돌의 사전에 아직 '유유히'는 없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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