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 칼럼]북한에 대한 고정관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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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해 가을 첫 방북때 북한 순안공항에서 평양시내로 들어가는 차중에서 나는 기이한 장면을 목격했다.4차선 대로변 좌우에는 많은 행인들이 묵묵히 길을 걷고 있었다.

아낙네도 있고 인민복 차림의 남정네에 군인도 있었다.모두가 등뒤에 괴나리봇짐을 하나씩 메고있었다.

나는 그때 지레 짐작했다.아! 남한의 언론인과 학자들이 온다니 이 사람들을 동원해 우리에게 식량난의 실태를 보여주는가 보다고. 평양시내의 지하철과 궤도전차 운행구간은 비교적 짧다.

남은 거리는 대체로 도보를 이용한다.그들의 일상적 출퇴근 모습이 그러하다는 사실은 1주일 뒤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사흘 뒤 평양 외곽의 대성산성 답사를 끝내고 하산할 무렵, 우리 일행은 인민학교 학생들이 소풍 나와 도시락을 먹는 곳을 지나게 됐다.나는 유심히 그들의 도시락통을 살폈다.

흰밥을 가득 채운 도시락도 있고 잡곡밥 위에 빵 하나를 얹은 도시락도 있었다.대체로 만족할 만한 한 끼니였다.

이번엔 어린 학생들을 동원해 풍족한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선전이라고 미심쩍어했다.그러나 대성산 유원지쪽으로 나오자 동원했다고 보기엔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잔디 위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북한사람 모두 잘 먹고 있다는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아사자가 있을 만큼 식량사정이 어렵겠지만 전국적 현상은 아니라는 양면성을 알자는 뜻이다.

대체로 우리들은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북은 조직된 통제사회다.일거수 일투족이 계획된 지시와 감시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고 믿기 때문에 나 자신도 지레 짐작과 망상으로 북을 보고 판단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뒤늦게 했다.

물론 공산주의 국가의 특징이 조직과 통제일 것이다.그러나 황석영 (黃晳暎) 이 북한기행에서 적고 있듯 그곳도 사람이 살 만큼의 여유와 즐거움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애써 부정하고 있다.

고정관념이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북을 보는 우리 시각이 편견과 아집, 체제의 우월감과 자만심에 가득차 있어 북을 제대로 못 보거나 보지 않으려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 않나 하는 기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때가 됐다고 본다.

북에 대한 남쪽의 고정관념은 대체로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한쪽이 햇볕론.맏형론.개혁개방론이라면 그 반대편이 강풍론.단계론.상호주의로 맞선다.

비료를 보내 북의 식량수확을 원천적으로 증가시키고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창출하면서 경협을 활성화하면 북의 동토가 햇볕에 녹아 개혁개방노선을 택할 것이라는 게 전자의 논리다.

우리 자신이 먹고 살기 힘든데 쌀.비료를 보내면 그것이 부메랑이 돼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냐, 북은 변하지 않는데 왜 우리만 안달이 나서 대화니 협력이니 하느냐, 천천히 해도 늦지 않고 저쪽도 무엇을 줘야 우리도 줄 수 있다는 입장이 후자다.두 주장이 너무나 팽팽히 맞서 있어 토론의 여지가 없다.

어느 쪽 입장이든 북의 실상 파악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눈으로만 보고 주장한다.

정해진 논리와 감정에 따라 북을 규정하고 노동신문이나 평양방송을 통해 암호풀이하듯하는 대북 (對北) 정보로선 북의 실상에 접근하기 어렵다.북한의 교통법은 어떤가.

형법은 어떻고 아파트 입주는 어떤 방식으로 결정되는지 구체적 자료가 없고 실증이 없다.

다만 전언 (傳言) 과 인상으로 후려치고 자신의 시각에 맞춰 북을 해석하고 재단하려 든다.여기에 따라 우왕좌왕한 게 우리의 대북정책이었다.

정경분리에 따른 경협만이 유일한 대북접근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북한엔 우리식 기업인이 없다.우리는 정치와 무관한 기업인이고 저쪽은 당과 정부의 당국자인데 과연 정경분리 원칙으로 경협이 제대로 진전될 수 있을까. 왜 교류와 협력을 하는가.

전쟁의 공포와 군사적 대치를 서로 줄이기 위해 정치.군사적 협상이 필요하고 평화의 제도화를 위해 교류.협력이 유효한 것이다.두 바퀴가 함께 돌아야 한다.

여기에 대한 우리 정부의 큰 그림과 전략이 나와야 국민적 합의를 이룰 수 있다.한쪽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체파악으로 북을 연구하는 새로운 자세가 필요하다.

권영빈<논설위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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