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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금도냐 후진타오냐 … 중국어 표기 어떻게 할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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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금도(胡錦濤) 주석, 청융화(程永華) 대사.’ 주한 중국대사관 한글 사이트에 떠 있는 표기다. 국가주석은 '후진타오'라는 중국어 발음 대신 한자음인 '호금도'로, 대사 이름은 한자음인 '정영화'가 아닌 중국어 발음 '청융화'로 적고 있다.

'오우삼 감독, 양조위, 린즈링...1월 22일 대개봉!' 영화 '적벽대전 2'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문구다. 화인(華人)들의 이름이 어떤 이는 한자음으로, 또 어떤 이는 중국어 발음으로 적혀 있다.

중화요리집 메뉴판은 중국어 표기 난맥상의 정점을 이룬다. 자장면이라고 적은 식당도 차마 ‘짬자면‘으로 적지는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깐풍기(干烹鷄)’는 한자음 ‘간팽계’도 중국어 발음 ‘간펑지’도 아니다. ‘기스면[鷄絲麵]’ 역시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표기법이다. 대신 ‘양장피(洋張皮)’는 한자음으로 표기된다.

23일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 1층 회의실에서 열린 ‘중국어의 한글표기법 문제와 대안 모색’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는 이런 원칙 없는 현실 상황을 풀어보려는 목적으로 마련됐다. 중국어문학회(회장 조희무)와 본사 중국연구소(소장 유상철)가 공동 주최한 이날 모임에는 국내 중국 어문학자 100여 명이 모여 ‘중국어 발음’ 표기를 주장하는 측과, ‘한자음’ 표기를 주장하는 측으로 의견이 갈려 열띤 토론을 벌였다.

◇중국음이 대세 vs. 한자음이 편리= 엄익상 한양대 중문과 교수는 발표문을 통해 고유명사의 경우 중국어 원음(原音)대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의 모든 외래어 표기에 원음주의를 채택하면서 중국어만 한자음으로 적는 건 일관성 원칙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자음 표기를 하게 되면 일반 대중이 수많은 한자를 학습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양동숙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베이징(北京)의 베이(北)와 북방(北方)의 북(北)이 다르게 표기되는 혼란을 지적하면서 “우리 고유의 음을 지키지 못하고 현대 중국음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다면, 서양언어의 잠식보다 더욱 위험하고 혼돈스러운 상태를 맞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맹주억 외대 중국어과 교수는 현행 외래어 표기법의 표기 범위가 구체적이지 못하다면서 “베이징 도로 이름인 ’三環路’를 ‘싼환루‘, ‘싼환로’, ‘삼환로’ 가운데 어떻게 표기할지 난감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맹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원지음 표기를 하되 잠정적으로 ‘한자음을 쓰고 괄호 안에 원지음을 표기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양세욱 교수는 “이 혼란은 현행 표기법이 공감대 없이 급히 정해져 초래된 문제”라며 “서두르지 말고 언중(言衆)의 선택을 기다리자”고 말했다.

◇1911년 앞뒤로 이름이 바뀐다고?=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동양의 인명·지명 표기에 대해 “중국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하여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 원칙적으로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고 규정한다.

조관희 상명대 중문과 교수는 “1911년(신해혁명) 이전의 ‘胡適‘은 ‘호적’이라 부르고, 1911년 이후의 ‘胡適‘은 ‘후스’라 불러야 하는가?”라며 절충적인 현 규정을 비판했다. 그는 ‘이태백’과 ‘소동파’ 역시 ‘리바이(李白)’와 ‘쑤스(蘇軾)’며 ‘공자(孔子)’ 역시 '쿵쯔'라고 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 주권’을 내세우는 ‘쿵쯔’ 표기법에 대해 양세욱 교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공자’라고 부르는 것이 ‘공자’를 타자화하지 못해서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양 교수는 “지금이 과도기인 이상 친숙한 한자음 표기로 ‘형식적 일관성’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어 외래어 표기법의 문제=중국어의 자음은 22개다. 한국어의 자음은 19개다. 중국어에는'3중 모음이 있지만 한국어엔 없다. 원음주의를 따른다 해도 ‘마오쩌둥(毛澤東)’인지 ‘마오저뚱’인지 중국 화폐의 단위가 ‘위안(元)’인지 ‘위앤’인지 중국어를 모르는 일반인은 구분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 정부 표준안은 86년 공포된 외래어 표기법 가운데 ‘중국어의 주음부호와 한글 대조표’다. 하지만 국내 중국어문학계는 정부의 중국어 표기법 대신 13개 이상의 표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현행 정부안이 지나친 간결화로 중국어 원음과 차이가 많이 난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이날 사회를 맡은 김현철 연세대 중문과 교수는 "중국어문학회 차원에서 표기법 소위원회를 구성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통일안을 만든 뒤 이를 국립국어원에 제출하겠다"는 학회 차원의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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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낚시터 국빈관’ 식의 뜻풀이 표기도 한 방법”

“참가자들은 먼저 베이징 동인당주식유한공사의 제약 공장을 참관하였으며 이어 낚시터국빈관에서 중국예술인들의 예술소품공연을 보았다.” 올해 1월16일자 북한 노동신문의 한 기사다. 6자 회담이 열리던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를 북한은 ‘낚시터 국빈관’이라고 적는다. 원음표기도 한자음 표기도 아닌 뜻풀이 표기법이다. 이날 양세욱 교수는 ‘댜오위타이와 낚시터국빈관 사이’라는 발표문에서 남북한의 중국어 표기법의 문제를 지적했다.

1985년 개정된 북한의 ‘외국말 적기법’은 총칙에서 “우리는 우리 말의 민족적 특징을 살리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다른 나라 말의 단어 특히 고유명사를 그 나라 말의 발음대로 적는데 적용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중국어의 경우 그 나라 발음이 아닌 한자음으로 표기하고 있다. ‘호금도, 온가보, 주은래, 상해, 산동성’ 식이다. 단, ‘베이징’, ‘홍콩’, ‘마카오’는 ‘북경’, ‘향항’, ‘오문’으로 표기하지 않는다.

양 교수는 “북한 매체에서 ’낚시터 국빈관’ 이외의 뜻풀이 사례를 찾지 못했지만 국내 원음주의 논쟁에서 참고할만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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