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정치는 OK, 감성 경제는 NO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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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호 02면

오늘은 정말 잔인했던 오월의 마지막 날이다. 엘리엇은 사월을 잔인하다 했지만 올해는 오월이 더 잔인했다. 남북관계는 팽팽한 긴장 국면에 들어섰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그제 끝났다. 잇따른 초대형 악재에 나라가 잘못되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오월이었다. 내가 노 전 대통령을 이해하는 코드는 감성(感性)이다. 정치도 감성, 경제도 감성 코드였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바보 노무현’ ‘서민 대통령’은 감성 정치의 상징이다. 국민에게 감성적으로 다가온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수백만 명의 국민이 분향소를 찾아 애도한 건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 본다. 문제는 경제다. 경제는 정치와 달리 이성(理性)의 영역이다. 가슴은 뜨겁더라도 머리는 차가워야 하는 영역이다. 하지만 고인은 경제도 정치처럼 감성적으로 다뤘다. 서민ㆍ중소기업ㆍ지방을 ‘내 편’으로 삼았다. 그러곤 부자ㆍ대기업ㆍ강남을 ‘네 편’으로 몰아붙였다. 그래서 경제는 성공하지 못했다. 부동산 값은 폭등했고, 투자는 부진했으며, 국가채무는 급증했고, 임기 내내 경제위기 논쟁에 시달렸다. 경제는 탐욕의 산물이며, 경제학은 그런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부의 생산과정을 따지는 학문이라는 걸 고인은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이명박 정부에 기대했던 건 고인이 거부했던 ‘이성의 경제’였다. 경제를 살리려면 그래야 한다. 경제 하나만은 차가운 머리로 해 주길 바랐다. 그러나 요즘 정부가 하는 걸 보면 그런 기대마저 접어야지 싶다. 하라는 감성 정치는 안 하면서, 해선 안 되는 감성 경제에 꾸역꾸역 다가가고 있는 듯하다.

며칠 전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내년은 물론 향후 5년간 나라 살림을 어떤 기조로 가져갈 것인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여기서 당분간 재정지출을 늘리겠다는 방침이 결정됐다. 대통령도 재정 건전성보다 중요한 게 국민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서민의 고통도 거론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결정이다. 재정 건전성에 더 역점을 둬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는 건전성을 따져선 안 된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 놓고 봐야 한다. 하지만 경제가 나아지기 시작하면 정부는 정책 기조를 ‘빚 갚기’로 확 틀어야 한다. 하물며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부 아니던가. 일자리 마련 운운 역시 잘못됐다. 일자리는 민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정부가 만들 수 있는 건 임시방편적인 일자리뿐이다. 그걸 기업인 출신인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한 달여 전 기획재정부는 내년 예산 편성지침을 짜면서 이번과 정반대로 재정 건전성을 강조했다.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올해 나라 빚이 급증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정부 방침이 확 바뀐 연유가 무엇일까. 둘 중 하나지 싶다. ‘노무현 효과’ 때문이거나, 5년 단임제이기 때문이거나. 전자라면 이 정부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고인이 잘한 건 정치지, 경제는 아니었다. 후자가 원인이라면 정말 무책임한 일이다.

공기업 평가도 그렇다. 요즘 공기업 사장들은 대대적인 감사를 받느라 초긴장 상태다. 결과는 3주쯤 뒤 나오는데, 점수가 시원찮으면 잘릴 수도 있단다. 이 역시 온당찮은 일이다. 평가 자체가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순서가 잘못됐다는 게다. 최선책은 유능한 사람을 사장으로 앉힌 후 그에게 경영을 일임하는 것이다. 그런 후 임기가 끝날 때 재신임을 묻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이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유·무능을 따지지 않은 채 낙하산 인사로 상당수 자리를 채우지 않았던가. 기준이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는지, 대통령 패밀리와 친분이 있는지라는 얘기는 진작부터 파다했다. 그래 놓고 엄격하게 평가한다며 야단법석 떠는 건 전형적인 감성 경제 코드다.

전 정부에서 임명된 사장을 물갈이하기 위해서라는 얘기가 자꾸 나오는 건 그래서다. 대통령은 속히 이성의 경제 코드로 돌아가야 한다. 그게 지난 대선 때 대통령을 지지한 국민의 요구라 생각한다. 그래야 감성 경제 코드를 업고 파상적으로 전개될 야당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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