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봉하마을에서 발견한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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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경남 김해시 진영읍의 봉하마을을 처음 찾은 건 지난해 11월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연루된 세종증권 매각 비리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쌀쌀한 날씨만큼 주민들의 반응도 차가웠다. 사저 앞에서 관광객들을 맞은 노 전 대통령은 “형을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달 뒤 노건평씨가 구속되자 “따뜻해지면 돌아오겠다”는 말을 끝으로 그의 은둔생활은 시작됐다. 지난 3월 말 ‘박연차 리스트’가 불거졌을때,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을 앞둔 4월 말에도 이곳을 찾았다. 사저의 창마다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다. 일부 주민은 “뭐 좋은 거 있다고 오느냐”며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5월 23일 토요일 아침,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듣고 봉하마을로 다시 내려갔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진한 슬픔이 느껴졌다. 일부에선 현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분노를 토해냈다. 몇몇 사람이 마을 앞을 지키고 서 ‘검열’을 했다. 조문을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 취재를 할 수 있는 기자와 할 수 없는 기자로 갈랐다. 어떤 화환은 짓밟히고 불태워졌다. “이렇게 하는 게 돌아가신 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 “자유롭게 취재를 할 수 있도록 하자”(배우 문성근)는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전직 대통령을 잃은 슬픔은 편 가르기로 더해졌다.

“어릴 때 가재와 개구리 잡던 곳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노 전 대통령의 고향 마을에서 지난 6개월 동안 벌어진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노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봉하마을이 저항과 분노를 상징하는 ‘실패의 역사’로 기록될까 봐 솔직히 두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찾은 그곳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 소속 회원들도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조문객에게 수송 버스를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는 송철섭(41)씨는 “다 같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게 그분의 뜻이었다. 이제는 우리의 몫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는 봉하마을을 ‘아주 작은 비석’이 세워진 희망과 화합의 상징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거센 바람이 불거나 찬 비가 내릴 때 상처받은 가슴을 보듬을 수 있는 평화로운 곳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김진경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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