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친일 진상규명, 분열 확대 안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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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6대 국회 막차를 타고 통과된 친일진상규명법이 시행도 해보기 전에 개정안이 나온다. 열린우리당이 조사범위의 확대와 위원회 기능 강화를 골자로 한 개정안을 당론으로 정해 오늘 국회에 제출한다. 우리는 이미 이 난을 통해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진상을 밝히되 그것이 또 다른 우리 사회의 분열과 대립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역사적 정리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 시점에 조사범위를 확대해 가면서 이 문제를 부각해야 하는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친일규명의 문제와 이 정부 들어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대립각이 일치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친일을 규명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정권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조사대상을 넓히는 데 따른 부작용 또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일제시대에 보통의 생활인으로서 말단의 관직을 가졌던 사람들까지 조사대상으로 할 경우 대상자들이 본의 아닌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이들을 조사대상자로 규정해 놓으면 미리 친일파로 지레짐작해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간 일부 학계를 중심으로 이뤄진 친일행위에 대한 평가작업은 평가대상자와 연구자 간의 골만 깊게 파이는 결과를 빚곤 했다. 친일행위를 시인한 사람은 미당 서정주 등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여서 그만큼 규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친일 진상규명이 또 다른 분열과 대립의 씨앗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냉정함을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규명이 정죄(定罪)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정리한다는 차원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정안에는 동행명령 등 적극적인 조사기능이 포함돼 있고 신문.방송.출판물을 통한 공표금지 조항도 삭제돼 있다. 따라서 그만큼 명예훼손 등의 가능성도 크다. 조사 주체가 과연 객관적이고 치밀한 분석을 하고 책임감을 갖느냐도 중요하다. 백을 밝혔다 해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