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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38> 대동아의 신화 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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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만약 대동아 전쟁 때 가모 마부치(賀茂眞淵·1697~1769)의 벚꽃 노래를 알았더라면 어린 마음속에 품었던 의문이 풀렸을지 모른다. “중국 사람들에 보이고 싶구려/미요시노(吉野)의 요시노의 산에 핀 야마 사쿠라의 꽃들이여.” 만약 가모 마부치가 요시노 산에 핀 산벚꽃나무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 감동을 중국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그 노래를 지은 것이라면 대동아 전쟁은 말 그대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것이라고 믿어도 좋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에게 일본인만이 즐길 수 있는 벚꽃을 뽐내려는 우월의식에서 나온 노래라 한다면 그것은 아시아를 벚꽃으로 뒤덮으려는 침략의 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것이 불행하게도 후자라는 것은 후타가와 스케지카(二川相近·1767~1836)가 그 뒤에 쓴 벚꽃 노래에서 엿들을 수 있다.

“벚꽃으로 밝아지는 미요시노(三芳野)의 봄날 새벽 경치 바라다보면/ 중국 사람도 고려 사람도 야마토 고코로(大和心·일본인의 마음)를 알게 되리라.” 요시노의 벚꽃을 일본 고유의 무사도 정신과 결합시켜 중국과 한국을 지배하려는 대륙 콤플렉스를 드러낸 노래다. 그가 말하는 ‘야마토 고코로’야말로 수업 때마다 귀따갑게 들어온 야마토 다마시(大和魂)와 같은 말이다. 해방 후의 아이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했지만 식민지의 아이들은 학교 마당에서 놀 때에도 “사이타 사이타 사쿠라노 하나가 사이타 (피었다 피었다 벚꽃이 피었다)”를 불렀다.

앞서 말한 가모 마부치에게 영향을 받은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는 40년이나 걸려 일본의 『고사기전(古事記傳)』을 완성해 ‘야마토 고코로’의 국학을 세웠다. 유교나 불교의 대륙 사상에 물들지 않은 일본 고유의 신도(神道) 이론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야마토 고코로, 즉 황국심(皇國心)은 ‘나오비노미타마노가미(直毘<970A>神)’의 선신(善神)에서 나오는 것으로, 솔직하고 진심 그대로 행동하려는 마음이다. 그 반대의 신이 화를 가져다주는 악신(惡神) ‘마가쓰비노가미(禍津日神)’인데 일본 땅에서 살지 못하고 대륙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인심을 현혹시키고 권력을 찬탈하고 그것이 마치 영웅적인 행동인 것처럼 미화하고 합리화했다. 요순(堯舜)·주공(周公)을 비롯한 성인들이 모두 그러했다는 것이다. 특히 내놓고 모반을 선동한 맹자(孟子)가 그렇다고 했다(기억해 주기 바란다. 앞글에서 나는 학교란 말이 『맹자』에서 나온 말임을 밝힌 적이 있다).

악신의 농간으로 대륙의 사상들이 일본 땅에 들어와 단순소박한 일본인의 마음을 속이고 오염시켜 천황을 중심으로 세운 나라를 근본적으로 뒤엎고 말았다. 그 탓으로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천황을 능멸하는 무리들이 권세를 장악하게 되었다는 논지다. 그래서 대륙 사상들을 몰아내 옛날의 ‘야마토 고코로’를 되찾아 황도(皇道)를 바로 일으켜야 한다는 게 그의 국학이요,‘고신토(古神道)’의 부흥이다.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국수주의는 명치유신의 개국을 타고 야마토 고코로의 사쿠라 꽃이 되어 식민지 학교 마당에도 만발하게 되었다. 유불신(儒佛神) 삼교를 습합(習合)해온 오랜 일본의 전통은 무너지고 황실의 조상신(天照國大神) 하나만을 믿는 일신교 같은 체제로 바뀌면서 일본의 군국주의는 결국 대동아 전쟁이 된다.

그러나 형님들이 다니던 한국의 서당에는 벚꽃이 아니라 민들레가 심어져 있었다고 했다. 벚꽃처럼 요란스럽게 일시에 폈다 지는 그런 꽃이 아니라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은 잡초와 다름없는 꽃. 일본 사람의 야마토 고코로를 만든 것이 벚꽃이라면, 한국인의 서당 아이들의 마음을 키운 것은 아홉 개의 덕을 가진 민들레꽃이었다고 한다. 길가에 피어나 수레가 지나고 사람들에게 짓밟혀도 끈질기게 피어나고 그 뿌리를 캐내어 버려도 다시 움이 난다는 민들레는 인(忍)과 강(剛), 벚꽃처럼 한꺼번에 피는 집단적인 꽃이 아니라 한 대공이씩 기다렸다 차례대로 피는 예(禮), 어두워지거나 비가 오려 하면 꽃잎을 닫는 선악의 분별력, 또한 새벽에 먼동이 트면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근면의 덕이 있다. 자르면 어머니 젖처럼 하얀 진액이 나오는 자(慈)요, 이파리에서 뿌리까지 나물을 무쳐 먹을 수 있으니 용(用)이다. 종기에 붙이면 치료가 되니 어진 인(仁)이며 무엇보다 그 씨앗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스스로 번식하여 융성하게 자라니 용(勇)이라 할 수 있다. 사당이 문을 닫고 아이들은 학교 마당으로 몰려간다. 민들레가 시든 서당의 자리에는 어느새 요시노의 벚꽃이 만발한다. 대동아의 신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다음 회는 ‘매화는 어느 골짜기에 피었는가’입니다 joins.com/leeo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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