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노자가 말한 좋은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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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그분이 남긴 유서 내용이 가슴을 울린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곱씹을수록 여운이 남는다. 죽음 앞에서 초연해진 그분의 마지막 마음이 눈에 선하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말은 곧 ‘있음’과 ‘없음’이 하나임을 뜻한다. ‘얻음’과 ‘잃음’도 종국에는 하나임을 의미한다. 노자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우리는 노자가 말한 좋은 정치에 대해 찬찬히 되새길 필요가 있다. 거기서 깨달음을 얻는다면 우리는 잃고도 얻을 수가 있다.

노자에게 좋은 정치란 무위(無爲)의 정치다. 그는 무위로 정치를 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억지로 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자의 이런 견해는 유교와도 상통한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이든, 무위이화(無爲而化)든 그게 그거 아니겠는가?

노자는 잘라 말한다. 임금이 최고의 정치를 하면 백성은 임금이 있다는 사실만을 안다. 그 다음 수준의 정치를 행하면 백성들은 그 임금을 좋아하고 찬양한다. 그 다음 수준의 정치를 행하면 백성들은 그 임금을 두려워한다. 그 다음 수준의 정치를 하면 백성은 그 임금을 업신여긴다.

임금이라는 말을 정당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좋다. 정당이 최고의 정치를 하면 백성은 정당이 있다는 사실만을 안다. 정당이 그 다음 수준의 정치를 하면 백성은 그 정당을 좋아하고 찬양한다. 정당이 그 다음 수준의 정치를 하면 백성은 그 정당을 두려워하고, 또 그 다음 수준의 정치를 하면 그 정당을 업신여긴다. 물론 임금이라는 말 대신에, 정당이라는 말 대신에, 검찰이라는 말을 넣어도 좋다.

노자가 말하는 좋은 정치란 유약(柔弱)의 정치다. 좋은 정치란 물과 같아야 한다. 물은 세상에서 가장 약하지만 물이 돌을 뚫고 물이 돌을 밀어낸다. 그래서 물은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 딱딱하고 뻣뻣한 것을 공격하자면 물보다 앞세울 것이 없다. 말랑말랑한 것이 딱딱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뻣뻣한 것을 이긴다. 그래서 물보다 나은 것이 없다.

군대가 뻣뻣하면 이기지 못하고 나무가 뻣뻣하면 부러진다. 경찰도 군대의 경우나 나무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힘을 빼야 힘이 나온다. 하늘은 언제나 약하고 부드러운 자를 돕는다.

노자에 따르면 좋은 정치란 모름지기 잃는 정치라야 한다. 특히 이긴 자, 가진 자는 주고 또는 잃어야 한다. 얻은 자가 더 얻으려고 하면 애초에 잃은 것만도 못하다. 가진 자가 가진 것에 집착하면 못 가진 자의 원망을 얻고, 가진 자가 더 많이 갖고자 하면 못 가진 자의 적이 된다.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게 되고 그칠 줄 모르면 위태로움이 쌓인다. 가진 자가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세상이 저절로 평안해진다. 남이 줄어들게 하려면 부풀게 해주어야 하듯이 내가 부풀고 싶으면 내 욕심을 줄여야 한다.

노자는 또한 포용의 정치가 좋은 정치라고 강조한다. 불변의 세계를 아는 자는 모든 것을 포용한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세계에서는 너와 나의 구별이 없다.

정치란 무릇 하류(下流)와 같아야 한다. 강의 하류는 암컷과 같다. 암컷은 마침내는 모든 것을 품는다. 강의 하류도 모든 것을 품는다. 모든 것을 포용하면 모두가 하나가 된다. 모두가 하나가 되면 각각이 모두 주인이 된다. 그럴 때 천하가 태평해진다.

현인들은 남의 죽음에서 나를 얻는다. 남의 죽음을 폄하하고 훼예하면 죽은 자가 낮아지고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다. 폄하되고 훼예되는 것은 폄하하고 훼예하는 자다. 남의 죽음에서 교훈을 얻고자 하면 죽은 자의 명예까지 나의 것이 된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좀 더 숙연해져야 한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그분의 유지를 되새기는 것이 그분을 국민장으로 모시는 취지에 부합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곧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방법이기도 하다.

김민환 고려대 교수·언론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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