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사에 맡겨진 고객자산 안전한가…은행같은 법적보호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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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투신사에 맡겨진 고객자산이 안전한지는 세가지 측면에서 따져볼 수 있다.

첫째는 정부의 지급 보증 여부다.

투신사가 관리하는 고객재산은 정부보증 대상이 아니다.

증권투자신탁업법은 다만 '고객자산과 회사자산을 분리해야 한다' 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즉 고객자산은 회사자산과 분리해 수탁기관 (증권예탁원이나 은행) 의 금고속에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당연히 있어야 할 고객자산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연계콜' 이라는 형태로 회사가 고객 돈을 빌려썼다가 되갚을 형편이 안되면 피해를 보는 것은 고객이다.

신세기투신이 영업중지된 때는 6천여억원에 이르는 연계콜중 절반은 이미 형체없이 사라져버린 뒤였다.

다른 투신사들은 신세기보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예상되는 피해도 당연히 클 것이다.

고객 돈 유용행위는 판단의 차원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라도'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다.

투신사들이 '갚으면 되지 않느냐' 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이는 '고객자산과 회사자산의 분리' 라는 대전제를 망각한 얘기다.

고객자산이 안전하지 않을 수 있는 또는 다른 이유는 펀드운용이 고객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투신은 고객자산을 회사와 특수관계에 있는 기업이 발행한 채권등에 투자하는 등 '사금고화' 되고 있다.

정부의 개입도 문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 투신사에 주식을 매수하라고 지시하거나 수익률이 낮은 통화안정채권을 사라고 명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투신이나 고객입장에서 보면 이는 직접적인 손실 또는 기회이익의 상실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펀드를 시장가격으로 평가하지 않아 순자산가치보다 현저히 높은 장부가치에 환매가 이뤄질 경우 그로 인한 손실은 결국 남은 투자자들이 져야 한다.

투신사가 자본잠식상태에 있을 경우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환매는 보유현금 또는 자산을 매각한 돈으로 응해야 하는데 지금은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수익증권을 일단 떠안고 주가 (또는 채권값)가 올라갈 때까지 기다린다는 식이다.

투신사에 정말로 지불불능 같은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그냥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현재로선 은행예금과 같은 '법적보호' 는 기대하기 어렵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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