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망할 기업은 망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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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19일 산업자원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망할 기업은 망하게 하고, 새로운 기업이 나오는 등 기업의 순환이 잘 되도록 조속히 부실기업 처리방안을 마련하라" 고 지시했다.

이로써 지난해부터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 한국 경제의 대외신인도에 타격을 준' 기아.한보 및 한라 등의 처리에 가속이 붙게 됐다.

金대통령의 이같은 지시는 향후 경제정책의 방향을 가름하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취임 전에는 비상경제대책위를 중심으로 긴장된 모습으로 경제를 챙겼는데 취임후 오히려 경제운영의 중심이 흐려졌다는 지적에 대한 답이 나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아 등 3개 대형 부실기업뿐만 아니라 10여개 부실그룹의 처리 지연은 외환위기를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이 됐을뿐만 아니라 건전한 경영을 해 온 흑자기업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금융차입을 하는 등 흔히 말하는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 를 야기시켰다.

특히 자금시장의 경색과 함께 자금시장의 블랙홀로 불리면서 건전한 기업으로 자금이 흘러가지 못하게 막는 장애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대형 부실기업이 파산절차를 밟으면 은행이나 종금사는 스스로가 부실화되고 국제결제은행 (BIS) 의 자기자본비율을 못맞출까봐 부실기업에 대한 협조융자를 해 왔기 때문이다.

산업자원부는 이에 대해 최대한 빨리 구체적인 처리방안을 마련해 3대 부실기업을 일괄처리하는 '패키지방식' 을 제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과연 일괄처리방식이 효율적인지 혹은 처리가능한 기업부터 빨리 처리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지 더 검토해야 한다.

왜냐하면 거론되는 기업들의 규모가 워낙 커 만약 제3자매각방식일 경우 인수가능한 기업은 국내대기업이거나 외국기업으로 한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처리후의 충격을 감안하면 반드시 일괄처리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또한 처리과정의 주체가 산업자원부 혼자여서는 안되고 재경부나 금융감독위원회 등 관련부처와 긴밀한 협의를 거쳐 기업구조조정과 금융개혁의 정합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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