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놀이 바쁜 농협, 농민엔 대출 기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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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경남진주시치수면에서 5년째 방울토마토.멜론 하우스 재배를 하고 있는 崔운현 (44) 씨. IMF사태 이후 고급농작물 수요가 급격히 준 반면 기름값 상승으로 난방비 부담은 커져 고민하던 그는 난방비가 적게 드는 하우스로 교체해 영농비를 줄이기로 하고 이달초 2천만원을 빌리기 위해 농협을 찾았으나 빈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대출 재원이 없다는 게 농협측 설명이었다.

전북장수군천천면에서 돼지 7백여마리를 기르는 宋용기 (42) 씨도 올들어 두배 이상 치솟은 사료값을 마련키 위해 연초부터 농협을 쫓아다녔지만 "돈이 없다" 는 담당자의 말에 번번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91년 정부정책자금 2억여원을 대출받아 축산업을 시작한 그는 "사료값조차 마련하기 힘드니 돼지를 처분하고 폐업하는 수밖에 없는 막막한 실정" 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농협이 농민들에게 대출해주는 자금은 ▶일반대출▶정부지원 영농자금▶정부 정책자금 등 크게 세가지. 농협중앙회는 IMF 사태가 터지자 지난해말 각 단위농협에 대출 전면중단을 지시했다.

전남나주 남부농협의 경우 지난해말 이후 가구당 2백만원 정도의 정부지원 영농자금 대출만 이뤄지고 있을 뿐 현재까지 일반대출은 한 건도 없다.

이 농협 대출담당자는 "하루 10여건의 대출상담이 들어오지만 일반대출이 언제 재개될지 알 수 없다" 고 밝혔다.

대신 일선 단위농협은 이자율 16~17%의 농민대출보다 이자율 21%의 농협중앙회 예치에 치중하고 있다.

2월말 현재 전국 대부분 지역 농협의 중앙회 예치비율은 지난해말 25~30%에서 70~80%로 두세배씩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일선 농협이 농민들에게 대출하는 자금은 정부지원 영농자금과 정책자금에 치중돼 있고 일반대출은 기존 대출금 연장 외에 신규대출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 그 결과 올해 1, 2월 대출총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1조9천5백여억원보다 35% 줄어든 1조2천7백여억원에 그쳤다.

이에 대해 농협중앙회측은 "IMF 여파로 예금이 급격히 빠져나갈 기미를 보여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출을 줄였다" 며 "농민들이 금리가 낮은 일반대출을 받아 다른 금융기관에 맡길 우려도 있어 시중금리가 안정될 때까지는 제한할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최재희·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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