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 제의 배경]야당 지도부에 힘실어줘 꼬인 정국 풀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여야 관계 정상화를 위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영수회담이란 카드를 빼들었다.

균형을 잃고 표류하는 정국을 청와대가 나서 조정역을 맡겠다는 의미다.

여소야대라는 원초적 한계 속에 金대통령이 내린 정국해법인 셈이다.

교착상태에 빠졌던 국회가 지난주 경제청문회.북풍 (北風) 국정조사 연기와 추경안 분리처리 합의로 겨우 터널을 빠져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 정치개혁.선거법.총리 임명동의안 처리 등 쟁점들이 산적해 있다.

金대통령은 총무협상으로 막 해빙무드로 접어든 여야관계에 영수회담을 통해 훈풍을 불어넣겠다는 뜻이다.

정국 정상화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정지작업이다.

국민회의.자민련 - 한나라당의 원내 대결구도를 한차원 끌어올려 여 - 야 - 청와대의 삼각구도로 가져감으로써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계산도 깔린 것 같다.

金대통령은 또 김종필 (金鍾泌) 총리서리체제 출범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다만 조세형 (趙世衡) 국민회의총재대행의 사과는 검토하고 있지만 金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는 모양새는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여권의 현재 분위기다.

현 야당 지도부에 힘을 실어줘 정국의 파트너로 삼겠다는 뜻도 있다.

야당 지도부를 국정파트너로 최대한 예우, 집권 초기부터 꼬여가는 정국의 매듭을 순리적으로 풀어가겠다는 것이다.

4.10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도체제 정비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한나라당의 속사정을 감안한 것이다.

의원 고스톱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한나라당 사정을 고려, 정치권 자정과 정치개혁에 대한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해준다는 뜻도 담겨있다는 것이 여권 고위층의 얘기다.

한 고위 관계자는 "정치는 대화" 라며 "현안에 얽매이지 않고 국정 전반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 이라고 말해 특정 주제가 아닌 포괄적인 대화가 오갈 것임을 시사했다.

영수회담의 월례화도 같은 맥락에서 나오고 있다.

야당 협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발판 다지기인 셈이다.

아시아.유럽정상회의 (ASEM) 참석에 앞서 영수회담을 갖겠다는 것은 외교문제도 야당의 견해를 적극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해외순방뒤 설명회 형태로 야당 총재들과 형식적 만남을 가졌던 김영삼 (金泳三) 전대통령과도 차별화해 새로운 대통령상을 부각하는 부수적 효과도 노린 것 같다.

이정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