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앙은행 총재도 사임…환율급등·주가폭락 금융권 휘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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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본 검찰의 금융업계 접대비리 수사가 대장성에 이어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에까지 확산되면서 일본의 금융시스템 전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다음달부터 개정 외환법과 일은법 (日銀法) 이 각각 시행될 예정이어서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12일 도쿄시장에서 엔화는 한때 달러당 1백29엔대로, 닛케이 평균주가도 1만7천엔대 밑으로 떨어졌다.

마쓰시타 야스오 (松下康雄)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일은 (日銀) 영업국 증권과장이 시중은행들로부터 상식 밖의 고액 접대를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자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총리에게 사임 의사를 밝혔다.

지난 94년12월 임기 5년의 총재로 취임한 마쓰시타가 사임할 경우 전후 일본은행 총재로선 처음 중도 하차를 하는 케이스가 된다.

지난 1월 미쓰즈카 히로시 (三塚博) 대장상과 고무라 다케시 (小村武) 대장성 사무차관이 접대 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한 것까지 감안하면 일 금융정책의 수뇌부가 두달새 모두 물러난 셈이다.

또 '미스터 엔 (円)' 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신原英資) 대장성 재무관 (대외경제정책 총괄) 도 과거의 접대 비리 때문에 내부 조사를 받고 있다.

일 금융계의 수뇌부가 이처럼 수난을 당하는 것은 금융계의 잘못된 관행들 때문이다.

NHK TV가 자체적으로 조사해 12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일본은행 간부와 대장성 커리어 (경력) 의 관료 출신들이 민간 은행의 70%와 증권사중 절반 가량에 임원으로 재취업, 금융계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장성과 일은 출신으로 민간 금융기관의 임원으로 재취업한 사람은 모두 1백92명에 달했다.

금융시스템내의 수뇌부 경질이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엄청나다.

대장성과 일은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현재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 이라며 수뇌부 교체 시기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최근 금융시스템 개혁과 안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은은 지난해부터 부실 금융기관 구제를 위해 8조7천억엔의 특융을 실시하고, 오는 3월말 금융기관 결산을 앞두고 엔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무제한 개입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이번 총재 경질로 일은이 그동안 주장해온 초 (超) 저금리 정책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본다.

일은은 경기회복을 위해 정치권의 압력을 뿌리치고 지난 95년9월 이후 중앙은행 재할인율을 사상 최저인 연 0.5%로 유지하고 있다. 일 정부는 또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30조엔의 재정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또 당장 4월초부터 개인이 마음대로 외환을 거래할수 있는 새 외환법이 실시돼 개인 금융자산의 상당부분이 해외로 유출될 우려가 크다.

일은에 대해 대장성이 행사했던 임원 임면권, 업무 명령권을 박탈하고 일은 정책위원회에 금융정책의 최고 의사결정권을 부여함으로써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대폭 강화한 개정 일은법도 다음달부터 시행된다.

6월에는 대장성의 금융감독 부분이 떨어져 나와 총리 직속의 금융감독청이 발족된다.

국제 금융시장은 사람과 제도가 이처럼 바뀌는 과정에서 재정자금 투입이나 경기부양책 마련등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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