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공연 앞둔 조수미의 ‘요리 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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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당근 주스 한 잔. 점심: 발효한 인삼과 고기 한 덩어리. 저녁: 빵·감자 등 조미 하지 않은 탄수화물’.

자신이 이름 붙인 요리들을 맛보고 있는 소프라노 조수미씨. “‘밤의 여왕’은 두 가지 면을 가진 여성이에요. 딸을 향한 애정과 잔인함이 공존하죠. ‘조수미 메뉴’의 메인 요리에는 서로 다른 맛의 두 생선 요리로 이 이중성을 표현해 봤어요.” [김태성 기자]

소프라노 조수미(47)씨가 지키는 공연 당일 식단이다. “간간이 바나나도 먹어요. 테니스 선수들이 먹는다기에….” 그는 “노래는 노동”이라는 말로 운동 선수 식단을 벤치마킹한 이유를 설명했다. 보통 3시간에 달하는 오페라 무대는 그에게 넓은 경기장이다.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공연 전 고기 1㎏을 먹는다는 일화가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먹는 것 vs 안 먹는 것=20년 넘게 세계 오페라 무대의 ‘여자 주인공’이 된 비결은 이같은 음식 조절에도 있다. 조수미는 맛과 재료에 모두 까다롭다. “샐러드에서 양파는 빼요. 생 양파는 너무 자극적이어서 수프로만 먹죠.” 신맛이 덜한 발사믹 식초는 목을 깨끗하게 해주는 느낌 때문에 대부분의 음식과 함께 먹는다.

“초콜릿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준 최대 선물”이라고 말하지만 목에 휘감기는 느낌이 노래를 방해하기 때문에 공연 당일엔 절대 먹지 않는다. “다 경험에서 나온 거죠. 음식 조절을 못한 탓에 무대에서 당황한 일도 많았어요.” 좋아하는 초밥과 회가 무대 위의 에너지 소모를 감당할 수 없는 음식이라고 판단한 것도 실제 경험 덕이었다.

경험만큼 중요한 것은 호기심이다. 그를 세계 무대에 올려놓은, 특유의 호기심은 레스토랑에서도 발휘된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당장 주방으로 뛰어들어가요. 어떤 재료를 넣었는지, 조리 과정은 뭔지 꼼꼼하게 물어보죠.”

◆‘조수미 메뉴’ 만들기=이렇게 익힌 실력으로 그는 ‘조수미 메뉴’를 이달 만들었다. 리조토 애피타이저, 양파 수프, 샐러드, 연어 또는 소고기의 메인, 초콜릿 케이크의 디저트 등 다섯 가지 음식으로 된 코스다. 조수미는 이 음식에 들어갈 메뉴를 일일이 고르고 ‘투란도트’ ‘밤의 여왕’ ‘커피 칸타타’ 등 음악과 관련한 이름을 각각 붙였다. 이 메뉴를 출시한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21일 만난 조수미는 “수프의 치즈가 더 끈적해야 한다. 샐러드엔 당근이 꼭 들어가야 한다”는 등 꼼꼼한 조언을 풀어놨다.

‘비발디’라 이름 붙인 샐러드를 앞에 놓고 조수미는 인생을 떠올렸다. “‘사계(四季)’로 이뤄진 인생이 꼭 샐러드 같아요. 그래서 여기엔 네가지 색 야채를 써달라고 했어요.” 그는 ‘배우고, 열심히 활동하고, 원숙해지고, 베푸는’ 네 단계 중 자신은 지금 ‘가을’에 와 있다고 했다. “전 여름이 좋은데…. 에이, 초가을이라고 해주세요.” ‘조수미 메뉴’는 이달 30일까지 조선호텔에서 판매한다.

▶조수미와 흐보로스토프스키=28일 오후 7시 30분, 30일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02-3461-0976

김호정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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