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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세 몰랐던 우물 안 개구리 조선, 미국과 수호조약 체결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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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서양의 서쪽, 동양의 동쪽에 있다고 합니다.” 1876년 수신사로 일본에 갔다 온 김기수는 고종이 미국의 위치를 묻자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얼버무렸다. 일선 외교관조차 미국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유교화 정도를 기준으로 세상을 중화와 이적을 가르는 화이론의 세계관으로 볼 때, 우리 눈에 비친 미국은 예의염치를 모르는 오랑캐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1880년 제2차 수신사 김홍집이 받아 온 『조선책략』은 기왕의 부정적 미국관을 일순간에 뒤집어버렸다. “예의로 나라를 세웠기에 남의 땅과 백성을 탐하지 않으며, 굳이 정치에 간여하지도 않는다.” 미국에 대한 찬사가 가득 담긴 이 책은 러시아의 침략성을 과장하면서 이를 막으려면 미국과 손을 잡아야만 한다고 속삭였다. 약소국 편에 서는 부강하고 공평무사한 나라의 이미지는 우리 위정자들 뇌리 깊숙이 아로새겨졌다.

1876년 일본이 쇄국 조선의 굳은 빗장을 열자, 두 해 뒤 무역의 확대를 노린 미 해군성은 해군에서 ‘가장 뛰어난 외교가’로 소문난 로버트 슈펠트(사진·1821∼1895) 제독에게 조선 개국을 명하였다. 그는 1880년 4월 타이콘데로가호로 일본에 왔다. 그러나 도와주리라 기대했던 일본은 시늉만 했고 조선은 일본을 매개로 한 교섭을 거부했다. 자기 이름을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길 기회가 사라져가던 그해 7월. 중국의 실력자 이홍장이 생각지도 않은 도움의 손길을 그에게 건넸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자국 방위에 전략적 요충인 조선을 러시아가 손아귀에 넣지 못하도록 미국을 이용할 속셈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27년 전 1882년 5월 22일 제물포에서 조선대표 신헌과 슈펠트는 조미수호통상조약에 조인하였다. 상리를 좇는 미국의 경제적 야욕과 이이제이(以夷制夷) 수단으로 미국을 써보려 한 중국의 전략적 동기가 결합해 이루어진 조약이었다. 이 조약도 제국주의시대 특유의 불평등 조약임에 진배없다. 하지만 조선의 사법제도가 미국과 같은 수준이 된다면 영사재판권을 철회하겠다는 단서조항이나, 중국·일본의 경우에 비해 고율인 10~30%의 협정관세율은 조선 위정자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특히 다른 나라의 부당한 간섭이나 침략에 대한 중재를 규정한 거중조정 조항이 제1조에 담겨 있었기에, 그때 우리 위정자들의 미국에 대한 짝사랑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1905년 미국의 일방적인 배신으로 끝난 23년간의 슬픈 한·미 관계사가 곱씹어 교훈으로 삼아야 할 거울로 다가서는 오늘이다.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