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가격변수 긴급 점검 ① 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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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국제 유가가 다시 치솟으면서 세계 경제회복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미국 서부텍사스유(WTI·현물 기준)는 20일(현지시간) 배럴당 61.59달러(7월 인도분은 62.04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22일 31.12달러로 바닥을 찍은 뒤 불과 5개월 만에 두 배가 됐다. WTI는 지난해 7월 중순 배럴당 145.49달러로 사상 최고치에 다다른 뒤 가파르게 떨어지더니 ‘V’자로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석유회사들이 유전 투자를 줄이고 있어 국제 유가가 지난해와 같은 급등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왜 오르나=석유공사 구자권 해외조사팀장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과 각국의 경기부양책에 대한 기대감 등이 유가를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OPEC는 지난해 가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유가가 급락하자 세 차례에 걸쳐 하루 생산량을 2905만 배럴에서 2485만 배럴로 420만 배럴(14.5%)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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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세력도 끼어들었다. 미국 석유산업연구소(PIRA)에 따르면 올 2월 미국 정부가 최대 1조 달러에 이르는 유동성 공급 대책을 발표한 뒤 일주일 동안 원유 시장에 14억 달러가 새로 흘러들어갔다. 넘치는 돈이 결국은 원유 시장에 들어갈 것으로 보고 투기 세력이 먼저 움직였던 것으로 PIRA는 추정했다. 실제로 WTI는 2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올랐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에서 반군 세력이 원유 생산시설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한 게 유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얼마나 오를까=20일자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경기 침체로 석유회사들이 유전 개발 투자를 꺼려 유가가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IEA에 따르면 전 세계 석유업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7개월간 하루 200만 배럴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인 1700억 달러의 신규 유전 투자 계획을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IEA의 패티 바이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가 건강한 회복을 이루려면 석유 생산에 대한 투자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샌디에이고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제임스 해밀턴 교수는 20일 의회에 나와 “중국 등지의 수요가 회복되면 2007~2008년 같은 유가 급등세가 다시 나타나 우리를 괴롭힐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가가 지난해처럼 치솟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더 많은 편이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어 석유 소비가 적어도 올해 안에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12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 4분기 WTI 평균가격을 배럴당 55.67달러로 내다봤다. 배럴당 60달러대 초반인 현재 가격보다 오히려 소폭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는 것이다. 다른 연구소들도 현 수준인 배럴당 50~60달러 선에 머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두바이유를 기준으로 4분기 70달러를 예상해 상대적으로 높게 봤다.

◆한국 경제 영향은=유가가 오르면 무역수지에 빨간 불이 켜진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과 한국 경제’ 보고서에서 “아직은 문제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돈을 더 벌게 된 산유국들이 수입을 늘리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으로서는 대산유국 수출이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가가 더 올라 배럴당 79달러(두바이유 기준)를 넘을 경우 무역적자를 낼 것으로 추산했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무역수지뿐 아니라 물가에도 부담을 주지만 다행히 최근 달러에 대한 원화 가치가 많이 상승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줄었다는 평가다.

권혁주·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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