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엘리트가 바뀐다]1.'西軍'이 몰려온다…'사회 중추' 물갈이 예고(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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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파워 엘리트의 교체현상이 구체화하고 있다.

단순히 새 정부의 호남출신 장관비율이 27.7%로 김영삼 (金泳三) 정권 초기내각의 20%보다 높으며, 호남.충청권을 합하면 55.4%에 이른다는 수치만 가지고 내리는 평면적 결론이 아니다.

영남출신 인사의 기용비율이 37.4%에서 25.1%로 다소 낮아졌다는 얘기만도 아니다.

권력핵심에서 각종 정치적 현안에 대한 최종결정을 내리고, 권력의 운용에 간여하는 자리에 전면적인 인적개편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각과 청와대.안기부 등의 핵심요직에 과거와는 전혀 다른 정치적.지역적.계층적 배경을 갖고 있는 인사들이 대거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차관급 인사까지 대부분 마무리된 새 정부 고위직 인사를 자세히 뜯어보면 이는 명백하다.

총리.감사원장.안기부장.대통령비서실장 빅4를 포함한 권력핵심의 10대 요직에서 호남출신은 5명, 충청출신 2명까지 더하면 70%의 압도적 점유율을 보인다.

정보와 공직감사.사정.군.치안.조세 (租稅) 등 '대통령의 귀와 손과 발' 이 적어도 지역적으론 완전히 새 얼굴로 물갈이되고 있는 것이다.

〈표 참조〉 5년전과 비교하면 변화는 보다 실감이 난다.

김영삼대통령의 첫인사에서 이들 10대 요직에 기용된 경남출신은 5명. 경북출신 2명을 포함할 경우 영남출신이 70%가 된다.

물론 새로운 파워 엘리트들은 과거 사람들에 비해 출신지역만큼이나 정치적 소신과 노선도 차이가 있는 면면들이다.

이같은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명하다.

우리 사회의 상부구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현재의 물갈이는 예고편에 불과한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 파장은 계속 확대되면서 사회전반이 '뉴 리더' 들의 진입과 이들이 주도하는 변화, 구세력과의 갈등으로 인한 각종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으로 내다보는 견해가 확산되고 있다.

현재 진행중이거나 앞으로 벌어질 이같은 상황들을 단순히 대통령이 바뀐 때문이라고 손쉽게 단정하기는 힘들다.

그러기엔 변화의 폭과 내용이 너무 크고 심각하다.

김대중대통령이 강조한대로 사상 처음 여야간 정권교체가 이뤄진 결과로만 보기에도 역시 충분치 못하다.

현재의 상황은 '건국이래 한번도 국가경영의 중심에 서지 못했던 소외계층과 소외지역의 손으로 권력이 넘어간 후 나타날 수 있는 사태' 라고 해야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능한,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짚어보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실 구여권은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그들의 파워 엘리트를 키워왔다.

그 시작은 건국이래 이승만 (李承晩) 대통령부터였고, 61년의 5.16으로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이 집권한 다음부터는 본격적이고 의도적인 영남엘리트의 중앙무대 진출이 계속됐다.

적어도 김대중대통령이나 구야권은 그렇게 보고 있다.

김영삼대통령도 비록 그 자신은 야당출신이었지만 구조적으로 영남인맥을 권력기반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예외가 될 수 없음은 그의 초기인사를 상기해 보면 명백하다.

이런 과정에서 '동군 (東軍)' 세력 중심구조의 형성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이들의 자리가 이제 '서군 (西軍)' 세력으로 넘어가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영남인맥은 스포트라이트를 호남인맥에 넘겨주고 퇴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같은 분석에는 많은 반론이 따를 수 있다.

우선 신정권이 자신들이 기용한 고위직의 비교적 균형잡힌 지역별 분포 등을 내세워 '서군약진' 주장을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할 수 있다.

경력면에서 서울대출신 등의 테크노크라트들을 다수 기용한 사례도 반론의 한가지 근거가 될 만하다.

같은 맥락에서 장.차관 가운데 김영삼정부의 사람을 유임시킨 경우도 있고 내부승진 케이스가 다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의 머릿수는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신정권의 핵심과는 거리가 있는 경력과 출신지역.배경을 지닌 고위직들의 존재는 산술적 균형을 잡아주는 효과는 거둘 수 있을지 모르나 이들 테크노크라트는 의사결정, 특히 중요한 국가정책 결정에 참여하기 어렵다.

이들의 역할은 매우 제약돼 있고 그나마 한시적 성격을 갖고 있다.

결정하는 사람과 집행하는 사람간의 역할.기능.위치.영향력은 그야말로 천양지차 (天壤之差) 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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