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낮 강원도 화천군 풍산리의 야산 기슭. 감자밭 옆에 처진 150㎡ 넓이의 울타리 너머로 흙 파고 채질하는 소리가 부산하다. 14일 시작된 한·미 양국 군 합동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폭 4m가량의 정사각형 구덩이 속에서 한국군과 미군 병사 6명이 삽과 곡괭이로 흙을 퍼 양동이에 담고 있었다. 작업복은 땀에 흠뻑 젖은 채 온몸이 진흙투성이였다. 바로 옆 분류장에서는 퍼낸 흙을 채에 걸러 전사자의 유품이나 유골로 추정되는 물체들을 골라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미군 합동포로실종자확인사령부(JPAC) 요원들이 보석이라도 캐듯 채에 걸러진 것을 조심스레 확인해 나갔다. 이들은 화천시내 모텔에 묵으며 강행군을 하고 있다. 통신 전문가인 여성 요원도 작업 때는 삽을 잡을 정도다. 한 미군 병사는 “작업장의 아이팟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만이 유일한 위안”이라고 말했다. 삽과 측량도구 등 모든 장비는 미국에서 공수해 왔다. 통신은 위성전화로 해결한다. JPAC는 2003년 10월 출범했으며, 박사급 전문 인력 30명을 포함해 18개의 발굴팀과 6개 조사팀 등 44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전쟁 당시 실종된 미군 유해를 찾기 위한 한·미 공동 발굴 작업이 14일부터 진행 중이다. 이번 공동 발굴 작업에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요원과 미군 합동포로실종자확인사령부(JPAC) 소속 전문가 등이 참여했다. 18일 강원도 화천군 풍산리 야산에서 양국 요원들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화천=연합뉴스]
화천 지역은 1951년 6월 국군과 유엔군이 다시 북진할 당시 미 9군단 예하 7사단과 24사단이 중공군과 맞닥뜨린 격전지다. 수많은 사상자가 생겼음은 물론이다. 발굴은 “3~4구의 미군 유해를 산기슭에 묻어 줬다는 얘기를 부친한테 들었다”는 주민 이모(75)씨의 제보로 시작됐다. 지난해 예비조사를 벌인 미군 측은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JPAC 발굴팀 12명을 파견했다.
한·미 양측은 2006년 서울 성산대교 인근에서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을 벌인 적이 있다. 하지만 발굴팀의 마크 웰치 대위는 “이번 발굴은 지난해 한·미 간 양해각서(MOU)에 따른 첫 합동 작업”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다음 달 13일까지 강원도 화천과 양구, 경기도 연천과 강원도 철원 등 네 곳에서 순차적으로 발굴이 이뤄진다.
발굴지 입구엔 JPAC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거기엔 수용소에 갇힌 포로의 모습과 함께 “당신은 잊혀지지 않았다(Yoy are not forgotten)”는 글귀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이영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