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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연명치료 중단 어떻게 이뤄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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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대병원의 연명치료 중단, 존엄사 허용 결정은 파격적이다. 누군가가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서울대병원이 대표자로 나선 것이다. 대한의사협회가 2001, 2002년 공론화에 나섰지만 소극적 안락사로 몰려 여론의 호된 매를 맞았다.

서울대병원이 나선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 사회가 서울대병원 의사들을 신뢰한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허대석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의사들이 존엄사의 전도사 역할을 해 왔다.

연명치료 중단은 의료계에서 암암리에 행해져 왔다. 서울대병원의 18일 공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한 해에 말기 암환자 436명에 대해 연명치료를 중단했다. 에이즈 환자 등 다른 질환으로 인해 말기 상태에 이른 환자를 합하면 훨씬 많을 것이다. 보수적으로 진료하는 서울대병원이 이 정도면 다른 병원은 말할 필요가 없다.

연명치료는 어느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의료계나 학계, 심지어 종교계에서도 회생 불가능한 환자의 생명을 현대 의술로 연장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당사자에게 고통을 줘 인간 존엄성을 파괴한다는 비판이 가장 컸다. 다른 환자의 중환자실의 이용을 제한하고 의료비를 늘리며 가족들에게 부담을 지운다는 비판도 있었다.

신촌세브란스 병원이 관련된 존엄사 소송과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존엄사를 보는 시각이 호전됐고 그런 분위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이 나선 것이다.

◆어떻게 결정하고 누가 대상이 되나=말기 암환자에게 사전 의료 지시서를 받는다.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혈액투석 등 세 가지의 연명치료를 받을지 결정한다. 환자가 먼저 사전의료지시서를 요구할 경우에만 받는다. 이 조건 때문에 실제로 의료 현장에서 해당자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지난해 12월 초안에는 말기 암환자뿐만 아니라 에이즈·루게릭·신부전증 말기 환자가 포함됐지만 논의 과정에서 암환자로 좁혀졌다. 정맥 주사를 통한 영양 공급 금지 방안도 포함돼 있었지만 논란을 줄이기 위해 뺐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말기 에이즈 환자에 대한 존엄사를 인정한다. 그러다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하면 만성질환 말기 환자, 그리고 최종적으로 식물인간의 존엄사까지 인정한다고 한다. 그러나 암·에이즈와 달리 식물인간은 상태가 매우 다양한 데다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면 우리 사회가 수용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일단 이번엔 말기 암환자만 대상으로 하기로 했다.

서울대병원은 말기 암환자 기준을 명시하지 않았다. 다만 15일 혈액종양내과 의사 회의에서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투여 등 기존의 항암치료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고 점점 악화되는 환자를 말기 암환자로 규정했다. 외국에서 통용되는 생존 기간 6개월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다.

◆문제점은 없나=우선 법적인 문제다. 현행 법상 연명치료 중단은 불법이다. 서울대병원 측은 의료진이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할 권리를 부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연명치료를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연명치료 중단과 거부의 경계선이 모호해 서울대병원의 해석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대리인이 사전 의료 지시서를 작성할 권한을 준 것도 논란거리다. 중환자실 치료비는 상당히 비싼 편이다. 가족들이 대리인 역할을 하면서 경제적 이유로 환자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

국립암센터 윤영호 기획조정실장은 “이번 서울대병원의 사전 의료지시서 공식화는 법적인 효력이 없다”며 “사전 의료 지시서를 누가 작성할 것인가의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 곽숙영 생명윤리안전과장은 “ 말기 암 기준 하나하나도 사실 논쟁거리”라며 “21일 대법원 판결을 존중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혜리·김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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