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대법관 희생 필요” “제도 개선이 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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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관여 논란과 관련해 18일 전국 9개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열렸다. 일부 법원에서는 사실상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강도 높은 결론을 낸 반면 다른 법원에서는 신 대법관의 거취 문제보다는 제도 개선이 우선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의정부지법 단독판사 24명은 이날 회의를 연 뒤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신 대법관의 용기와 희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주 서울중앙지법 등의 단독판사들이 직접적인 사퇴 촉구를 하지 않은 것에 비해 표현 수위가 높아진 것이다. 판사들은 “헌법상 신분이 보장된 법관의 거취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상당수 있다”면서도 “신 대법관의 사과로는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반면 판사 수가 서울중앙지법에 이어 둘째로 많은 부산지법의 단독판사 50명은 신 대법관이 재판상 독립을 침해했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려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울산지법 단독판사들은 “거취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고등법원 가운데 처음으로 판사회의를 연 특허법원의 배석판사들도 거취 문제 언급은 자제했다. 이들은 신 대법관의 거취보다는 법관의 관료화 저지와 제도 개선이 우선이라고 제시했다. 광주고법 배석판사들은 “신 대법관이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대법원의 조치도 미흡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서부·서울가정·수원·인천지법의 단독판사들도 이날 밤늦게까지 의견을 나눴다.

한편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은 신 대법관 문제와 관련해 판사들의 자제를 당부하는 글을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렸다.

김 처장은 이 글에서 “판사 한 분, 한 분이 여론이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적·합리적으로 판단해 행동하리라 믿고 있다”며 “부디 잘못이 또 다른 잘못을 부르고 그러한 잘못이 모여 우리가 전혀 바라지 않았던 결과를 낳는 일이 없도록 재삼, 재사 숙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김 처장이 글을 올린 것은 판사들이 직접적인 ‘사퇴 촉구’를 할 경우 법관의 신분 보장이라는 대원칙을 사법부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이날 각급 법원장의 사건 배당 재량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예규 개정안을 공개하고, 일선 판사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7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방침은 17일 구성된 재판 독립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와 함께 지난달 전국 법관 워크숍에서 합의된 것이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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