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빗나간 IMF 新語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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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해 11월 외환위기로 터져버린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을 지칭하는 이름들에 어느 결엔가 모두 IMF가 들어앉게 됐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을 지칭하는 말에는 IMF를 붙이는 것이 이제는 상식이다.

IMF세일이란 말까지 나온 모양이다.

세계 어디서도 유례 없는 현상이다.

아마도 이 현상의 시작은 경제상황 악화와 IMF프로그램의 동시성 (同時性) , 그리고 IMF라는 이름이 부르기 쉬운 약자 (略字) 라는 데 그 원인이 있었을 것이고 별 의미없이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신어 (新語) 들은 한마디로 틀린 말들일 뿐더러 조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무차별하게 쓰이다 보면 사태를 오도할 수 있는 위험성까지 있는 말들이다.

첫째는 이번 사태의 이름을 잘못 부름으로 해서 이번 사태의 책임이 엉뚱한 곳으로 전가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IMF는 이번 사태가 초래되는 데 있어서 아무 책임이 없다.

이 모든 것은 1차적으로 그동안 경제를 잘못 운영해 온 우리 정부.금융계.재계.정치권.노동권, 나아가서는 국민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지 IMF라는 변수는 이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후의 일이다.

이 오해의 위험성은 식자층에는 작다고 하겠으나 무조건 반외세 (反外勢) 적인 성향이 강한 어떤 계층에 있어선 그들의 사태 인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매사에 IMF 운운하는 우리의 태도는 불이 나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창밖에 불자동차가 와 있는 것을 보고 화재를 소방수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

둘째는 이 신어들을 보면 IMF 조건이 수월치 않다는 이유에서 모든 어려움을 IMF에 돌리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잘못된 일이다.

IMF가 우리에게 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경제전반에 걸친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이번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우리가 진작 했어야 할 일들, 앞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다.

특히 각 분야의 구조조정면에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만 우리의 정치구조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했을 일들, 속이 후련한 일들도 많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IMF 프로그램이 아니라 만약에 IMF가 없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것이다.

IMF의 6백억달러가 없었고 외국은행들이 단기부채를 다 회수해 갔다면 결국 우리나라는 지급불능 상황에 도달했을 것이고 그날로 외환시장은 마비되고 무역은 정지됐을 것이며 정리해고가 문제가 아닌, 대량도산에 따른 대량실업이 따랐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거기서부터 새로 경제운용계획을 세우고 국제금융시장에서 신용을 회복하는 일을 시작했다고 생각해보자. 거기서 우리가 감수해야 하는 모든 재조정의 가혹함은 IMF 조건과는 비교가 안됐을 것이고 그 기간도 훨씬 길었을 것이다.

우리가 추운 것은 우리가 불조심을 안해서 집을 태운 탓이다.

IMF는 한파를 견디도록 도와주는 모닥불이지 한파가 아니다. 우리가 IMF프로그램 아래 있는 동안 우리의 주요 경제정책이 그들과의 타협을 거쳐서 결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우리 경제정책의 최종결정은 우리가 하는 것이지 IMF가 하는 것이 아니다.

또 IMF프로그램이 우리 경제정책의 전부를 커버하는 것도 아니고 IMF 프로그램을 떠나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너무도 많다.

정부는 정치적.경제적으로 힘든 정책이라고 IMF에 미룰 것이 아니고 설사 IMF가 요구해서 결정된 사항이라도 일단 합의가 됐고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사항이면 차라리 우리 정책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보다 떳떳한 자세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좀 더 의연하게 받아들여 새로 태어나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라도 더 우리 자신의 잘못을 찾아 보고 뜯어고쳐야 하는 마당에 모든 것을 IMF탓으로 돌리는 것은 건설적이지 못한 태도라고 해야 하겠고 언론에서도 IMF신어의 무분별한 사용은 자제하는 것이 책임있는 언론의 자세라 하겠다.

이단〈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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