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선 아티스트 정태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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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정태섭(55·얼굴 사진)씨. 연세대 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다. 그리고 ‘X선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픈 사람들을 만난다. 물론 X선을 촬영하는 게 그의 본업이다. 수십 년간 지속해 온 이 일상을 그는 예술로 승화시켰다. 의료용 X선 촬영 장비를 이용해 꽃·나뭇잎 등을 찍고 이를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다듬는 등 컴퓨터 그래픽 처리를 하면 새로운 이미지가 나타난다.

기발한 사진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일까. 내년부터 중학 미술 교과서에 그의 작품이 실린다. 미래앤컬처(옛 대한교과서)의 교과서에 작은 국화꽃들을 배열해 찍은 ‘꽃의 빅뱅’이 실린다. 과학 기술을 활용한 예술작품의 사례로 백남준의 ‘전자 고속도로’(1995)와 함께 게재된다.

새로운 시도의 출발은 가족 사랑이었다. “1995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살다시피 해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가족들을 X선 앞에 불러모아 사진을 찍었죠. 해골이 단란하게 모여 있는 사진이 나왔는데 반응이 의외로 좋았어요.”

이후 의료용 X선의 ‘다른 용도’에 주목, 식물 사진을 찍어봤다. 2007년에는 전시회도 열었다. 본격적으로 겸업을 시작한 것이다. 적당한 파장의 X선은 사물의 내부 구조를 보여준다. “반원형의 꽃잎이 야들야들 비쳐 보이고 암술·수술도 투과돼 드러납니다. 겉모습밖에 못 보는 우리의 시야를 확 넓혀 주는 게 바로 X선이죠.”

정 교수는 “골조가 탄탄해야 건물 외벽을 꾸밀 수 있는 것처럼 속이 굳건해야 눈에 보이는 모습도 오래 아름다운 법”이라고 말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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