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하루 굶기 캠페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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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기아병 (饑餓病)' 을 처음 연구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직접 굶어죽는 체험을 했던 폴란드 의사들이었다.

이들은 나치가 바르샤바를 고립시켜 굶겨 죽이려 했던 주민들 사이에 끼여 있었다.

삼엄한 감시를 뚫고 밀반입된 하루 8백㎈의 음식밖에 섭취하지 못해 서서히 죽어가면서도 이들은 기아병을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전쟁이 끝난 뒤 이들의 연구 결과는 인간의 아사 (餓死)에 대한 유일한 자료로 임상 문헌에 들어가게 됐다.

그때의 연구에 따르면 조금만 굶어도 처음 나타나는 신호는 계속 목이 타고 소변의 양이 줄곧 늘어나는 현상이다.

또한 입안이 마르고 몸무게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조금 더 굶으면 어떤 감정도, 삶에 대한 어떤 의욕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배고픔조차 기억하지 못하지만 먹을 것을 보면 매우 공격적으로 돌변해 음식을 잽싸게 빼앗아 한입에 집어넣는다.

마침내 지방질이 없어지면서 피부는 검고 건조해지며 곳곳에 주름살이 생긴다.

여자는 불임 (不姙) 이, 남자는 생식불능이 되며 태어나는 아기는 모두 몇주만에 죽는다.

중추적 기능들이 동시에 쇠락하면서 맥박과 호흡이 느려지고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다가 결국 숨이 멎는다.

아주 적은 식사로도 몇달 동안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몸과 마음의 손상은 매우 급격하게 나타난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다.

나치의 악랄성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그들은 음식을 섭취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죽어가는가를 '관찰' 하면서 즐거워했던 것이다.

지금은 나치처럼 사람을 강제로 굶기는 집단은 없지만 세계 곳곳에는 식량부족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북한이 대표적이다.

북한 당국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96년 한햇동안 굶주림에 의한 영양실조.질병으로 사망한 5세 이하 어린이가 무려 12만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좋아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전세계 종교지도자.사회단체 대표.정치인들이 4월25일 오전9시부터 오후9시까지 전세계 70개 도시에서 '북한기아대책 하루 굶기 국제 캠페인' 을 벌이기로 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굶주리는 북한동포를 돕기 위한 성금 모금에도 의미가 있지만 '굶어본 사람만이 굶주림의 고통을 알 수 있다' 는 측면에서 더욱 많은 사람의 동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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