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심훈 '그날이 오면' 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 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며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리이까

- 심훈 '그날이 오면' 중

이 시는 일찍이 C M 바우러 (옥스퍼드대 시학교수) 의 '시와 정치' 에 소개돼 구약시대 다윗 시편을 연상시키는 그 비장감이 멀리 알려졌다.

3.1운동에 참가한 심훈 (沈熏.1901~1936) 은 '상록수' 의 소설가일 뿐 아니라 30년대 뛰어난 저항시인으로 고난의 길을 걸었다.

'그날' 이란 얼마나 강렬한 환희인가.

오늘의 나약한 1인칭 시편들이 배울 바인지 모르겠다.

고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