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적인 30대 두밴드, 음악으로 갈구하는 이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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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10년전만 해도 노동자와 지식인 집단은 뚜렷한 형체와 힘을 갖고 있었다.

두 집단은 언젠가 만나 합쳐질 이상향을 꿈꾸며 자신들의 집단이 해야 할 일에 대해 고민했었다.

하지만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IMF한파를 거치면서 두 집단은 각각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있고, 함께 만날 이상향의 꿈도 요원해져 버렸다.

두 공학박사가 참여한 '지식인' 밴드와 연주 짬짬이 노동으로 생계를 잇는 '노동자' 밴드가 최근 나란히 데뷔음반을 냈다.

똑같이 80년대에 젊음을 묻은 두 30대 밴드는 새삼 지나간 세월을 떠올리게하지만, 본인들은 그런 의미부여를 거부한다.

출신이나 환경과 무관하게 자유로운 음악을 할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고 그들 음악에서 세월과 사연이 감지되지 않을 수는 없다.

서울대 공대에서 박사를 이수.수료한뒤 대기업 연구원으로 일하는 보컬 (도현오).기타리스트 (송현주) 등으로 구성된 '노클루' . '아무 실마리가 없는' 이란 뜻의 그룹 이름처럼 이들의 음악은 대안 없는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의 구멍뚫린 가슴을 노래한다.

아직 꿈이 있었던 10년전 ( '1986' ) 은 거품이 꺼지고 소외만 남은 요즘 ( '낯선 천국' )에 처연히 대비된다.

"그 어떤 것도 사랑할 수 없고/그 무엇도 기억나지 않는 낯선 거리, 낯선 천국" 으로 요즘 시대를 바라보는 이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못알아듣겠어/속시원히 말을 해봐/한심하게 웃지만 말고" 가 반복되는 노래 'F.U' 를 통해 그 천국의 소통불능성을 한탄한다.

이들의 음악이 현재와 과거의 대비에만 머물고 있지는 않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 모천회귀 의식, 심지어 동성애에 이르기까지 이념을 대체해 90년대를 수놓았던 각종 화두들을 녹인 '그녀가 말하길' 은 새로운 대안을 찾고싶은 안타까운 마음을 담고있다.

하지만 그늘진 음색의 보컬과 유약한 느낌의 사운드는 종내 이들의 노래를 막다른 골목으로 데려간다.

외로움이 주조인 그들의 음악은 세대를 초월한 공감보다는 그룹 이름처럼 '아무 실마리가 없는' 현실을 되씹게 만들고있다.

한편 리더와 베이시스트가 건설현장에서 일당 5만원의 노동으로 생계를 잇는 밴드 프리다 칼로는 70년대 음악의 향취가 물씬한 하드록을 통해 좀더 보편적이고 따스한 음악을 들려준다.

그들의 음악은 요즘 흔한 기타 이펙트 한번 쓰지 않지만, 앰프의 톤만을 갖고 인간의 결이 느껴지는 음악을 들려준다.

'노동' 이란 낱말에서 연상되는 선입관과는 사뭇 다르다.

테크닉이 뛰어난 요즘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는 낯설고 어설픈 사운드일지 모른다.

그러나 심지어 음악에서조차 인간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솔직하게 사람내음을 갈구하는 목소리들이어서 조용한 울림을 던진다.

그 울림의 색깔이 잘 드러나는 노래 '난지도' 는 잦은 비로 일감이 떨어져 빌린 돈 몇만원을 독촉받던 아픔을 그리고 있다.

테크닉에서 아쉬움이 많음에도 어쩐지 기대가 되는 밴드가 프리다 칼로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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