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공백 끌어선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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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 대통령은 취임했는데 새 정부는 구성되지 못하는 기이한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새 대통령 아래 구 (舊) 총리와 구장관이 그대로 집무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기구와 직제를 대폭 뜯어고쳐 놓고도 그에 따른 인사도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니까 정부의 모든 부처가 일손을 놓고 있는 국정공백상황이 빚어지는 판이다.

평상시라도 이런 일이 있어선 안될 텐데 하물며 지금은 경제위기 상황이다.

여야가 합심하고 정부와 국회가 보조를 맞춰나가도 위기극복의 길은 까마득한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경제위기속에서, 게다가 희망의 출범이어야 할 새 대통령의 취임일에 주가를 폭락시키는 정치를 해서야 되겠는가.

경제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같은 고 (高) 금리.고환율체제가 앞으로 6개월이상 지속될 경우 중소기업은 물론 손꼽히는 대기업들조차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판에 소모적 정쟁 (政爭) 으로 행정공백과 국정표류를 지속시키면 경제가 어떻게 되겠는가.

총리인준문제를 둘러싼 국정공백을 더 이상 끌어선 안된다.

여야는 즉각 머리를 맞대고 상황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마침 대통령이 여야영수회담을 제의했으니 여야는 시간을 끌지 말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온 국민이 분노의 눈으로 정치권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한나라당에 대해 이미 누누이 얘기했지만 과거 자기들이 비난해마지 않던 국회보이콧이란 구태의연한 방식을 이제 와서 바로 자기들이 되풀이하고 있는 데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원내다수당이란 책임감이나 경제위기속의 국정과 민생을 생각한다면 결코 그런 정치행태를 보여선 안된다.

더욱이 그런 국회 보이콧이 국회표결에서 행동통일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하니 무슨 명분이 있는가.

더이상 단견적 (短見的) 당략에 매달리지 말고 넓은 시야에서 국익을 위해 여당과 경쟁한다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

그리고 여당도 이젠 '여당다운'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여당이라면 야당의 체면과 명분을 세워줄 줄 알아야 하고 야당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 정치상황을 조성해 나가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보면 야당이 막다른 선택을 하도록 방치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야당을 자극하기까지 했다.

가령 검찰이 DJ비자금수사를 하면서 본질문제인 비자금보다는 야당의 자료수집과정이나 한나라당의 선거자금조달에 대한 이른바 '별건수사' 에 더 치중한 듯한 인상을 주고, 심지어 검찰총장이 야당의 명예총재에 대해 인신공격까지 했는데도 내부에서 이렇다할 힐책도 없이 넘어갔으니 야당이 반발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또 영수회담 제의만 해도 사전에 정중한 의사타진과 간곡한 메시지 전달이 있었어야 했는데도 발표부터 했다니 도저히 세련된 자세라고는 보기 어렵다.

우리는 여당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높은 인기와 경제위기속에서 야당이 협조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안이한 판단 등으로 해서 교만해져서는 안된다고 본다.

생각해보면 야당의 체면을 세워주고 여당의 겸손을 보여줄 정치적 카드는 있다고 본다. 여당은 빨리 이런 금도 (襟度) 와 정치력을 발휘해 국정공백상황을 빨리 끝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총리인준문제로 헌정 (憲政) 의 파행적 운영이나 국정공백이란 새로운 불행을 원하지 않는다.

경제위기만 해도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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