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4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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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시장을 한동안 배회하던 그들은 마침내 흥정이 이뤄지고 있는 현장과 마주쳤다.

소쿠리와 채반을 가지고 나온 촌로와 중간상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흥정이었다.

온 식구들이 며칠 밤을 지새워가며 엮어 장터로 가지고 나온 그들 죽제품들의 값은 무척 헐했다.

그러나 중간상인은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부른다고 늙은이의 얼굴이 벌게지도록 닦아세웠다.

하지만 모처럼 관심을 보여준 상인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촌로의 조바심 때문에 흥정은 가까스로 계속되고 있었다.

결국은 처음에 호가했던 거의 반값으로 흥정이 마무리되려는 찰나였다.

낯선 사내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남의 흥정에 끼어 들었다.

흥정의 내막을 물어본 사내는 매우 가당치 않다는 기색으로 흥정하던 중간상인에게 귀엣말을 했다.

그러나 귀엣말인 것처럼 시늉만 했을 뿐, 곁에 서 있는 촌로도 얼마든지 알아챌 정도였다.

그 사내의 말은, 내륙의 시장으로 실어가 보았자 팔리지도 않을 물건을 무슨 배짱으로 미련하게 흥정을 하고 있느냐고 얼굴까지 붉혀가며 면박을 주었다.

건질 체면조차 없어진 상인은 머쓱한 나머지 당장 자리를 뜨려 했다.

하얗게 질린 촌로가 상인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결국은 담판에 이르렀던 가격보다 더욱 싼 값에 죽제품을 넘겨주기로 낙착이 되었는데, 그 찰나에 뛰어든 것이 그동안 흥정되어 가는 꼴을 구경만 하고 서 있던 민창제였다.

애당초 흥정이 되었던 값으로 촌로가 가지고 나온 죽제품 모두를 사겠다고 나섰을 때, 놀란 것은 상인들이었다.

그러나 상인들보다 더 놀란 사람들은 한철규를 비롯한 그들 일행이었다.

민창제가 그 흥정에 뛰어든 속셈을 몰랐기 때문에 무모한 돌출행동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촌로는 미련없이 자리를 뜨고 있는 상인들을 향해 손사래를 쳐보았지만, 그들은 이미 등을 돌리고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다 지어놓은 밥에 난데없이 재를 뿌리고 나선 젊은 놈의 거동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촌로는 억장이 무너진 나머지 말문조차 열지 못하고 있었다.

민창제는 난처하게 된 것을 알아채고 늙은이를 끌어안으며 안심시키려 애썼다.

네 사람은 얼떨결에 각자 지녔던 여비를 갹출하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소문나지 않았던 돈들이 속주머니에서 쏟아져 나왔다.

흥분했던 그들은 내친 김에 용달차로 서울까지 가기로 합의가 이뤄졌고, 갹출된 여비를 몽땅 털어 소쿠리와 채반들을 사들였다.

출발 직전에서야 그들 상인 두 사람은 같은 일행일 뿐만 아니라, 동업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장국 집에서 아침을 먹을 때, 안쪽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던 그들 두 상인을 민창제는 기억하고 있었다.

적재함에 난데없는 죽제품을 가득 싣고 서울로 돌아가고 있는 용달차는 상인들을 묵사발로 만든 대견스러움과, 장차 서울에서 벌어질 기대감으로 사뭇 흥분되어 있었고 시끄러웠다.

죽제품을 소매하게 되면, 적어도 세배 이상의 이문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울로 돌아가는 길은 순탄하지 못했다.

경기도로 진입하던 길목에서 한 시간 이상이나 계속되었던 소낙비를 아무런 대책 없이 그대로 맞은 것이었다.

용달차를 그대로 몰고 마치 개선장군들처럼 서울의 세종로 입성을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덮개를 씌우고 떠나자는 운전기사의 충고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던 탓이었다.

운전기사가 가볍게 건넸던 그 충고의 심각성을 네 사람은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세종로 입성은 그들 뜻대로 이루어졌지만, 연도의 행인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눈여겨보거나 박수 따위는 쳐주지 않았다.

우선 반포에 있는 민창제네 아파트 지하실에 죽제품을 보관했다.

개학을 사흘 앞둔 날에 그들은 다시 모였고, 지하실에 보관되었던 죽제품이 단 며칠 사이에 애물단지로 변해버린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모든 제품에 곰팡이가 하얗게 피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곰팡이의 궁궐이었다.

시간을 두고 일일이 걸레로 닦아낸다 할지라도 곰팡이가 핀 자국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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