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 컷!]'생지옥'돼버린 '체험 삶의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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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직업 현장의 세계를 찾아가 어려움을 함께 하면서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킨 KBS2 '체험, 삶의 현장' 이 최근 지나친 현장성 부각으로 인해 오히려 거부감까지 주고 있다.

3D일터의 열악성만을 강조하면서 노동의 '가치' 보다는 '고통' 에 더 비중을 둔 느낌마저 든다.

지난 16일 방영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의 황놀부 탤런트 김상순. 서울 마포의 한 유리제품 공장을 갔다.

25㎏짜리 유리가루 포대 6자루를 나르는 것으로 시작한 그의 일과는 방독면처럼 생긴 마스크를 쓴 채 하얀 유리가루 뒤집어 쓰며 삽질하고, 보기에도 위태한 공작기계에 유리원료를 넣고 찍어내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간간이 비치는 다른 근로자들의 찡그리는 얼굴 역시 그 못지 않게 힘겨워 보였다. 카메라는 날카로운 유리조각과 시뻘겋게 달궈진 원료 등 위험한 작업현장을 연방 잡아낸다.

스튜디오로 돌아온 그는 “유리가루가 폐에 들어간다고 생각해봐요” “숙련공이 되려면 20년은 해야 돼요” 같은 얘기들을 털어놨다.

마치 그가 체험하고 온 것이 '삶의 현장' 이 아니라 '초죽음의 문턱' 이란 느낌. 다음으로 나온 '용의 눈물' 의 세자 탤런트 이민우. 땅속 53m의 지하철 공사장에서 땀을 흘렸다.

“다시 나올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는 그는 빛이 거의 안 들어오는 현장에서 철근을 메고 가다 쓰러져 깔리기도 했다.

무사히 돌아온 그 역시 “철골 구조물이 얽혀있어 푹푹 빠지고, 많이들 다친다고 하더라” “여름엔 공기가 나빠 3~4m 앞도 안 보인다” 는 식의 얘기를 던졌다.

그들이 살아 돌아온 건 다행이지만 그렇다면 그 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찌하나. 선인장을 따러 농촌에 간 탤런트 조은숙의 손에 피가 흐르는 모습을 몇 차례나 클로우즈업 하고, “알레르기가 생겨 병원에 갔다.

스태프들도 하루종일 가려워 긁었다” 는 얘기를 전하는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물론 이 프로그램은 음지에서 묵묵히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보람을 주는 긍정적 측면도 크다.

24일 방영된 의사의 경우처럼, 고상한 직업을 가진 사람을 하룻동안 생고생 시키며 느끼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하지만 3D업종을 지탱하는 데 큰 힘이었던 외국인 근로자들이 속속 이 땅을 떠나고 그 자리를 메울 한국인들이 없어 공장들이 애태우는 요즘, 일터의 맛과 즐거움도 조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재미를 위한 극적 효과보다는 현장이 가지고 있는 노동의 가치, 그 노동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 등을 조명하는 자세가 아쉽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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