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가격 거품이 걷힌다…조각품 경매 대부분 헐값 낙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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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정숙.문신.김창희씨같은 작고 작가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현재 활동 중인 조각가들 상당수는 지난 18일 일어난 일을 두고두고 씁쓰레한 기억을 갖게 될 것 같다.

지난 18일 서울 동숭갤러리에서는 오후3시부터 2시간 반에 걸쳐 조각품 경매가 열렸다.

경매가 필요하다는 말은 전부터 미술시장에 있어온 터이어서 경매 그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이날 경매는 마치 땡처리 세일같은 인상이 짙어 해당 조각가들이 '내 작품이' 하고 속을 끓이는 것이다.

화랑가 역시 그 의미를 심상치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 작품은 전시 당시 7백50만원 하던 것입니다.

1백90만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경매 사회자의 말 그대로 전시 당시 가격의 20~30% 정도라는 놀랄 만큼 낮은 가격에서 시작돼 대부분이 40~50%선에서 낙찰됐다.

이날 경매 성적은 1백58점 가운데 1백38점 낙찰, 총낙찰가는 7억7천4백만원이었다.

동숭갤러리 대표 이행로씨는 "미술품을 빌려주는 미술은행을 운영해오다 최근 경제난 때문에 되돌아오는 작품이 많아 어쩔 수 없었다" 고 경매 이유를 대고 있다.

그렇지만 깜짝놀랄만큼 낮은 최저가는 의도적이었다는 말도 했다.

"부르는 값과 파는 값이 각각인 이중가격제의 거품을 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 기대 이상입니다."

프라이드가 강한 작가들이 받아들이는 입장은 다르다.

최근 몇년간 작품값이 서서히 하향 조정됐는데 몇년전 가격을 들먹여 자신들이 마치 '과대평가된 작가인 것처럼 보이게 됐다' 는 것이다.

작가들의 씁쓰레함보다 이날 경매를 본 화랑주인들은 더 다급하다.

이날 경매가 미술품 가격하락시대를 알리는 기폭제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국내 미술시장에서 그림값이 피크에 오른 것은 91년말. 그후 차츰 하강세를 보여 최근에는 91년 최고가에 비해 30~40%가 내렸다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면 인기작가 C씨의 작품 경우 7천만원 하던 작품이 4천만원 대로 낮아졌다.

그런데 이번 경매는 공개된 자리에서 가격하락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이보다 더 낮춘 것이다.

고객과 관계, 비쌀 때 산 재고작품 등 생각하게 되면 화랑가의 걱정이 단순한 엄살이 아닌 듯이 보인다.

동숭갤러리는 이번 경매에 고무돼 다음달 초에는 조각이 아닌 그림을 갖고 또다시 경매를 열 계획이다.

또 강남의 화랑 2~3곳도 파격경매라는 행사를 준비 중에 있어 IMF시대에 미술시장도 가격하락의 회오리에 휘말릴 공산이 점점 커지고 있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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