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안 전격동의 후세인의 선택]사찰 허용 배경…버티기 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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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라크가 유엔의 중재안에 전격 동의함으로써 초읽기에 돌입했던 걸프위기가 새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과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이 22일 최종담판 끝에 이끌어낸 합의문은 24일 유엔 안보리 보고 및 승인 절차만 남겨 놓았다.

정확한 합의내용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회담참석자들의 발언과 정황으로 미뤄 짐작컨대 일단 미국이 주장해 온 사찰의 두 가지 전제가 충족된 것으로 보인다.

대량살상무기를 모두 파기한다는 91년의 안보리 결의 존중과 이를 위한 유엔무기사찰단 (UNSCOM) 의 활동 보장이 그것이다.

이는 곧 문제의 발단이 된 대통령궁 등 모든 의혹시설물에 대해 조건 없는 전면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가 관철됐음을 뜻한다.

이번 바그다그회담에서 최대 걸림돌은 사찰단의 구성과 활동기간이었다.

이라크가 2개월 시한부를 고집하는 바람에 마지막까지 진통을 겪었다.

이에 대해 아난 총장은 사찰단원과 함께 UNSCOM 회원국 25개국의 외교관이 동행하자는 이라크의 요구를 받아들여 '시한부' 단서를 철회토록 하는 데 성공했다.

이라크는 기존의 미국인 사찰단원은 '스파이' 라며 공정한 사찰단 구성을 주장해 왔다.

이와 함께 이라크는 경제제재의 완화 내지 해제를 안건으로 제기해 사찰문제와 연계했다.

7년간의 제재로 인한 경제파탄과 국민의 궁핍생활 해결을 호소하며 조속한 해제론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후세인이 이처럼 후퇴한 데는 자신의 권력기반마저 붕괴될 군사충돌에 더 이상 도박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모양새에서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기보다 국제기구의 뜻을 수용하는 형식이었다.

결과적으로 미국과의 대결을 통해 석유수출은 확대됐고 비참한 경제상황에 대한 국제여론을 환기하는 실리를 챙겼다.

더불어 미국과 기타 강대국간의 분열, 아랍국의 동조세력 확대 등 정치적 이득도 얻었다.

미국도 군사적 압박을 가하면서 아난 총장을 내세워 협상하는 화.전 (和.戰) 양면작전을 통해 이라크를 굴복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국내 비판여론에 밀린 미국이 합의내용을 빌미로 삼을 경우 이라크사태는 다시 반전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아난 총장은 서면합의서가 15개 안보리 이사국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자신감을 표시했다.

특히 그가 바그다드회담중 안보리 상임이사국 대표들과 전화로 과정을 협의하며 1차 조율을 거쳐 합의문에 서명한 만큼 돌발변수가 없는 한 안보리의 승인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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