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세계 '영토확장자' 멀티미디어 PD 천윤필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호출' 은 계속됐다.

인터뷰는 자꾸 중단. '잠깐' 하고 나가고선 40분이다.

그가 건넨 말 - . “제가 사이버 스페이스에 살다보니 시간감각이 영 없어요.” 천윤필 (31) 씨.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한슬소프트의 멀티미디어 PD다.

동화상.그래픽.음악.음향.문자 등을 조합해 컴퓨터 프로그램 만드는 일을 한다. 얼핏 TV나 광고 PD 비슷해 보이는데 업무 성질이 확연히 다르단다.

“다른 매체는 그냥 일방적으로 전달하잖아요. 이건 사용자와의 대화입니다. 아무리 멋진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사용자의 '클릭' 과 호흡을 맞추지 못하면 무용지물이지요.”

이미 선진국에선 낯설지 않은 분야다.

“미국에선 예술과 커뮤니케이션학이 이 계통의 양대축” 이라는 게 삼성전자 김윤경 선임연구원의 얘기. 일단 우리나라에도 유학파들이 주류다.

이에 비하면 천씨는 그야말로 '맨땅' 이자 '신토불이' 형이다. 92년 고대 신방과 졸업을 앞두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서려는 찰나, 과사무실에 날아든 한장의 추천서. 홱 나꿔챘다.

“대학 내내 컴퓨터에 매달렸거든요. 멀티미디어 PD란 얘기를 듣는 순간 이거다 싶었죠.” 입사후 3~4년간 컴퓨터 그래픽과 윈도우 프로그래밍에 빠져 살았다.

이젠 대기업에 초청강연을 나가는 수준. 고교때 록밴드 기타리스트로 활약한 경력까지 더하면 '펀더멘틀' 은 튼실한 셈이다. 이런 능력을 밑천으로 프로그래머.오디오디렉터.그래픽디자이너.DB전문가들의 의견을 조율하며 제품이자 작품을 만든다.

말이 조율이지 사실은 싸움이다.

'삼성 60년사' CD타이틀을 만드는 요즘은 음향 샘플링 비율, 그래픽 파일의 크기와 형식, 동영상 편집, DB구성 방식등을 놓고 하루종일 티격태격이다.

물론 대개는 “성질나면 아예 작업한 걸 날려버리는” 그의 승리로 끝난다.

멀티미디어 산업이 '뜨면서' 대기업등의 스카우트 제의도 많았지만 모두 정중히 고사.

“큰데 가면 관리자로 변모해야잖아요. 평생 창작에만 몰두하고 싶습니다.” 그에겐 바깥세상보다 사이버 세계가 편한 모양이다.

강주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