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행의 옴브즈맨 칼럼]조작정보에 걸려든 '미담' 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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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신문기자나 방송기자는 특종 (特種) 이나 미담 (美談) 기사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비는 성향을 지닌다.

그러나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비다 보면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되는데 그것은 도리어 특종 아닌 불명예가 되고 미담 아닌 망신으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그런 불명예와 망신은 비단 기자 스스로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언론 전체의 공신력을 위해서도 반드시 회피되고 또한 기피돼야 할 일임은 새삼 강조할 나위도 없을줄 믿는다.

물론 특종이나 미담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조건이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사로서의 필요충분조건을 냉철하게 헤아리는 기본적인 것에서 찾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수많은 기사에서 기사작성의 조건, 즉 육하원칙 (六何原則) 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들이 신문이나 방송에 범람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결국 함량미달의 기사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말해주는 셈인데, 신문이나 방송의 질적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이 시급한 과제인가를 시사해주고도 남는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일들은 특종이나 미담기사에서 잘못을 저지를 개연성을 얼마든지 지니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특히 신문이나 방송을 상대로 조작된 특종기사 또는 미담기사가 제보될 경우를 생각하면 거의 무방비상태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조작된 정보에 걸려들었을 경우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잘못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일은 그런 무방비상태가 지양되도록 하는 것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덫에 걸려든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독자와 시청자에게 그것을 사실대로 공개 (公開) 또는 공표 (公表)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최근에 있었던 한 소년의 자살미수와 유서내용 보도는 매스컴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새삼스럽게 제기해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이 보도가 방송과 신문에 나간 뒤의 파문은 엄청난 것이었다.

엄마의 병을 고쳐달라는 피맺힌 소년의 유서와 살신 (殺身) 의 자살기도는 세상의 동정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른바 미담기사로서의 효과를 충분히 거두고도 남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조작된 것이었음이 밝혀지자 이야기는 전혀 달라지고 세상의 충격과 실망은 차라리 분노로 점철됐다고 할 정도였다.

자살극은 엄마가 시켰고 유서내용은 베낀 것이라는 사실 앞에선 할 말을 잊을 따름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조작된 사실을 보도하는 신문이나 방송의 태도는 너무나 소극적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조작된 정보의 원죄는 조작한 당사자에게 있는 것이고, 매스컴은 다만 실수를 했을 뿐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한데 그런 생각에 바탕을 두고 매스컴이 소극적인 보도를 했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어떤 경우든간에 매스컴은 '보도' 한 책임을 져야 하고 그에 따른 잘못은 그것이 실수였다 해서 모면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단 이번 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매스컴은 잘못된 보도를 정정하는 데 인색하다는 소리를 들어온지 오래다.

물론 신문에 따라서는 정정보도와 반론권 (反論權)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만 그것이 객관적으로 만족스런 평가를 받기에는 미흡하다고 지적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데 이번 소년의 미담기사 조작사건은 단순한 정정보도의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이미 사건으로서의 성격을 갖춘 것이라고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작된 미담의 보도경위뿐만 아니라 조작이 들통난 뒤의 이야기들도 충실히 보도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상식에 속하는 일이라고 해야만 할 것 같다.

사실 많은 독자들로부터 미담소년의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데 대한 '충격' 의 소리를 듣는다.

심지어 매스컴의 사과를 요구하는 주장마저 있다.

그밖에도 조작된 미담기사로 말미암아 답지한 수많은 성금과 호의어린 조치들이 어떻게 됐으며 또한 그것이 어떻게 수습됐는지 궁금하다는 문의도 적지 않다.

나아가 조작의 하수인인 소년은 그렇다치고 그것을 시키거나 가담한 어른들에 대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그것을 제대로 주장하고 보도한 언론이 없다는 불만을 쏟아놓기도 한다. 이러한 독자들의 반응은 언론의 입장에서 겸허하게 수용해야 마땅하다는 것을 강조해 두고 싶다.

특히 이 점을 내가 강조하는 까닭은 두가지 점에 연유한다.

첫째는 독자의 그런 반응은 바꾸어 말해 신문이나 방송의 미흡함을 지적하는 것이나 진배없다는 점이다.

만약 매스컴이 일련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완벽을 기했다면 독자들의 불만이 그토록 클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신문이나 방송이 종래의 일방통행적인 제작에서 쌍방향적인 것으로 바뀌는 것이 시대적 추세라는 점이다.

이것은 보도제작에서 독자와 시청자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셈이다.

이번의 미담사건은 분명 일부 매스컴의 불명예와 망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벗어난 매스컴이라고 해서 예외적이라고 자만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는 인식이 있어야 할 줄 안다.

이규행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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