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이회창 때리기' 의도 궁금] 정치적 배경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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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의 비자금 의혹 수사와 관련, 검찰의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명예총재 조사방침에 한나라당측이 격렬히 반발하는 분위기 속에서 김태정 (金泰政) 검찰총장이 한발 더 나아가 21일 李명예총재를 공개 비난하고 나서 그 배경과 의도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비록 공보관을 통한 비난이었다 하더라도 특정사건 수사와 관련, 검찰총장이 조사대상자를 공개비난한 전례가 없는데다 상대가 바로 李명예총재이다 보니 검찰이 모종의 정치적 고려까지 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金총장은 21일 출근하자마자 김윤성 (金允聖) 대검 공보관을 불러 李명예총재를 비난하는 말을 받아쓰도록 한 뒤 "기자들에게 공식 발표하라" 고 지시했다.

정치적 파장 등을 우려한 金공보관은 곧장 박순용 (朴舜用) 중수부장실로 달려가 대책을 논의했으나 "총장이 결심을 하고 발표하라는데 어떻게 하겠느냐" 는 대답을 듣고는 결국 기자실을 찾아 발표문을 낭독했다.

20일 저녁까지도 검찰 내부에서는 이미 "李명예총재가 조사를 거부한다고 강제로 구인도 할 수 없으니 결국 조사는 물건너 갔다" 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총장의 비난 이후에도 검찰 내부에서 22일 미국으로 떠나는 李명예총재의 출국을 막겠다거나 반드시 조사하겠다는 강경 주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 관계자들은 金총장의 비난이 나온 것은 이번 수사의 전체방향과 무관하게 李명예총재 개인에 대한 감정의 표출이거나 정치적 배경이 포함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金총장이 비자금 수사유보를 발표하자 李명예총재측에서 "호남출신 총장이 이미 김대중후보에게 줄을 선 증거" 라며 소속의원들을 동원해 총장에 대한 인신공격성 공세를 한 것에 金총장이 몹시 섭섭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총장으로선 "그렇게 수사를 재촉하더니 막상 자기를 조사하려니 피하려 하고 있다" 는 반감이 수사 막바지에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 검찰 관계자들은 "金총장의 심정을 이해할 수도 있고 李명예총재의 무조건적 조사거부도 옳지는 않지만 검찰총수가 정치적 약자를 공개비난까지 해야 하느냐" 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또다른 분석은 어차피 李명예총재에 대한 조사가 불가능한 시점에서 더이상 李명예총재측이 'DJ비자금' 사건에 공세 (攻勢) 를 취하지 못하도록 상처를 입히자는 정치적 동기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李명예총재 조사를 둘러싼 양측의 갈등은 검찰측엔 "수사기관답지 못했다" 는 비난을, 李명예총재에겐 "당당하게 조사받으며 자기주장을 했어야 했다" 는 비판을 안겨주게 됐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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