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준비 필요한 대북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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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통령 취임사를 지켜보는 미국의 관심이 남다르다.

그리고 미국의 관심에는 기대와 우려가 엉켜 있다.

이들의 기대는 미국의 대한 (對韓) 정책 방향과 신임 대통령의 생각이 크게 어긋나지 않으리라는 예측에서 출발한다.

적어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우선시하며 대북 (對北) 포용정책을 견지하겠다는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발언에 미국은 일단 안도하고 있다.

그러나 실은 지난 정권의 방향잃은 대북정책에 대한 실망이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부추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남북관계와 대외정책에 대한 새 대통령의 깊은 이해가 내실있는 정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우려도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는 데 있다.

국제문제에 대한 새 지도자의 일가견이 전직 대통령의 실책과 차별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감당하지 못할 방향으로 전개될까 우려하는 조심스런 목소리가 들린다.

이들은 얼마전 김종필 (金鍾泌) 자민련 명예총재가 베이징 (北京)에서 맛보기로 흘린 6자회의 구상을 예로 든다.

예상대로 미국측은 이 구상이 어렵사리 자리잡기에 들어선 4자회담을 무실화 (無實化)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고 여러 경로를 통한 진의 파악 끝에 일단 잠잠해졌다.

한편 미국도 대북 경수로지원금 분담에 참여해야 한다는 金당선자의 발언 또한 미 정부와 의회 안에 조용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6자회의나 경수로 지원 관련 발언들이 놀랄 일은 아니다.

대선과정에서 나왔던 얘기들이고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도 한국 신정부를 '가능한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충분한' 협의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문제는 새 대통령측이 얼마나 준비된 구상을 어떤 형식을 통해 공론화하는가에 있다.

지난 5년 남북한과 미국 관계를 돌아보면 기존 틀을 뒤집을 획기적 대외전략이 기대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대북.대미 (對美) 관계는 우선순위를 따질 수 있는 선후 (先後) 관계가 아니다.

'민족과 동맹' 에 앞뒤를 매기는 데 감정이 앞설 수 없다는 말이다.

북한이 걸핏하면 우리를 공박했던 주장마냥 한국이 군사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홀로서려는 실속있는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 한 민족과 동맹에 선후를 따지고 싶은 충동은 유보해야 한다.

새 대통령의 신선한 취임사를 듣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정책은 이내 무시당한다는 지난날의 교훈을 되씹는 노력이 취임사를 가다듬는 마지막 순간에 요구된다.

길정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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